2004년 12월 16일 목요일

Jean Webster, Daddy-Long-Legs

다음 메인 창에 '키다리 아저씨' 영화 광고가 뜨기에 갑자기 다시 읽고 싶어져 구텐베르크에서 다운 받아 보았다. 다시 읽어도 재밌구려. 오랜만이라 느낌이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키다리 아저씨와 주디가 14살 차이라는 점은 잊고 있었다.

2004년 12월 12일 일요일

Raymond Chandler, Farewell, My Lovely

말로는 정말 멋있다. 나라도 사랑에 빠졌을 것 같아.

"Who is this Hemingway person at all?"
"A guy that keeps say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until you begin to believe it must be good."

이런 귀여운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누가 뭐래도 앨러리 퀸이 결혼했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리오든인지 리오덴인지 하는 말로 애인 쯤이야......(중얼중얼)

소설 자체는 꽤 비극이었다.

2004년 12월 8일 수요일

Patricia A. McKillip, The Forgotten Beasts of Eld

ISBN: 0152008691

맥킬립의 1974년 작. 우아하고 아름다운 글이다. 크로스 필터를 끼운 렌즈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초반에는 몰입하기 어려웠으나, 곧 굉장히 재미있어져, 마지막 장까지 보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맥킬립의 책을 몇 권 더 보고 싶다.

*아스님께서 빌려주심.(고맙습니다.)

2004년 12월 5일 일요일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Jan. 2005

Short Stories:
"Born Bad" by Arthur Porges 설마 유머?
Novelets
"The Lorelei" by Alex Irvine 인상적이었다. 이름이 낯익어 지금까지 이 사람의 작품 중 무엇을 읽었나 찾아보았더니, 예전에 F&SF에서 읽고 대단히 감동했던 단편 'Pictures from an Expedition'을 쓴 사람이다. (구 books 관련링크) 그 외 다른 단편들 중에도 제목을 보니 기억나는 게 여럿 있다. 장편을 읽어 볼까?
"Keyboard Practice" by John G. McDaid 이것 저것 비벼넣긴 했는데, 썩 잘 섞은 것 같지가 않군.
"The Blemmye's Stratagem" by Bruce Sterling 오, 스털링,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들었다. 기이하고 매력적이다.
"Last Man Standing" by Esther M. Friesner 재미있다.

2004년 11월 30일 화요일

Ellen Datlow, Terri Windling ed., Swan Sister : Fairy Tales Retold

ISBN: 0689846134

전래동화는 중요한 문학 소재이다. 옛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성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재해석해 나오는 책이 어디 한두 권인가. Year's Best Fantasy and Horror시리즈로 유명한 엘런 대트로우와 테리 윈들링이 엮은 Swan Sisters : Fairy Tales Retold도 그런 점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기획이다.

그러나 대트로우와 윈들링의 이 '다시 쓰는 옛날이야기'는 전래동화를 그저 '고쳐 쓴' 글이 아니라, 소재만을 따서 현대 환상 소설로 완전히 새로이 만든 글을 모았다는 점에서 독특한 매력을 지닌다.

각 단편의 뒤에는 짧은 저자 후기(설명) + 너댓 줄 길이의 편집자의 저자 소개 및 설명이 붙었다. 저자의 후기를 읽기 전까지 대체 무슨 소설을 기초로 엮어낸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도 있고, 첫눈에 어느 전래동화의 어떤 면에 주목했는지가 보이는 글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성에 갇힌 라푼젤에게서 고독에 갇힌 어린 소녀를 읽어낸 The Girl in the Attic (Lois Metzger), 후자의 예로 푸른수염 이야기를 여자아이의 뒤틀린 성장담으로 바꾼 Chambers of the Heart (Nina Kiriki Hoffman)를 들 수 있겠다.

탄탄한 작가진과 편집자가 만난 만큼 모든 작품이 평균 이상의 노련함을 자랑하는 안정적인 단편선이다. 어린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고난-성공'담인 아라비안 나이트 기반 단편 Golden Fur (Midori Snyder)부터 독자의 나이에 따라 감상이 사뭇 다를 빨간모자 소녀 이야기 Lupe (Kathe Koja)까지 개별 작품이 겨냥하는 연령층은 조금씩 다르나,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으로 주저없이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읽은 글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소녀의 성장을 담은 섬세한 단편 Awake (Tanith Lee)과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번역을 실은 'The Girl in the Attic'. 극찬을 받은 표제작 My Swan Sister는 아름답기는 하나 내 취향에는 너무 작위적이었다.

한 편 한 편이 깔끔하고 짧으며 청소년 독자를 겨냥하고 나온 덕분에 자간이 넓고 편집에 여유가 있으니, 판타지 원서 읽기에 도전하려는 독자에게도 첫 책으로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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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4일 수요일

Analog Science Fiction and Fact, Dec. 2004

Baby on Board by Kenneth Brady
A Plague of Ruins by Joe Schembrie
What Wise Men Seek by Mike Moscoe
The Fruitcake Genome by Carl Frederick
The Bambi Project by Grey Rollins
Savant Songs by Brenda Cooper
Small Moments in Time by John G. Hemry
Science Fact: Focusing Visions and Goal for Opening Space by Yoji Kondo and William A. Gaubatz
The Test by Kevin Levites

Irving Chernev, Logical Chess: Move By Move

ISBN: 0713484640

바둑으로 치면 '명국 심층 분석 기보집'쯤 되는 체스 참고서. 전술적인 면에서 체스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첫손에 권할 만한 책이다.

명기보 오십여 편을 킹사이드 어택(the kingside's attack)과 퀸즈폰 오프닝(the queen's pawn opening)으로 나누어 실었다. 각 대국의 한 수 한 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다루며 앞 뒤 정황에 따른 논리적인 움직임을 설명하여, 판 전체의 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흥미진진한 해설을 읽으며 따라 두다 보면 체스가 임기응변식으로 도망다니는 게임이 아니라 한 수도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 되는 넓은 전장의 전투로 보이기 시작한다. '폰 5개 = 나이트 1개' 식으로 설명하는 단순한 체스 교재에 답답함을 느꼈다면 특히 꼭 챙겨 봐야 하는 책. 요령이 아니라 기본을 가르친다.

대국이 익숙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는 있지만, 중요한 포석을 반복해서 지적해 주기 때문에 말의 움직임만 숙지하고 있다면 기초를 탄탄히 하기 위해 읽어도 좋겠다. 눈으로만 훑어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책이니 말과 판을 준비한 다음에 구입할 것! 체스마스터들이 자신의 명국을 직접 해설한 세 번째 파트는 앞 두 부분보다 조금 어렵다는 점도 참고 삼아 적어 둔다.

2004년 11월 11일 목요일

Leslie What, Olympic Games

ISBN 1892391104

좋은 책을 많이 출간하는 소형 출판사, Tachyon Pub.에서 나온 Leslie What의 첫 장편소설.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들을 현대 뉴욕으로 끌어왔다.

오래 전, 아직 신이 신 대접을 받던 시절, 제우스는 어린 물의 요정 페넬로페를 마법으로 유혹하다 헤라에게 들키고, 급한 마음에 페넬로페를 나무로 바꿔 놓고 아내를 달래러 가 버린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때는 현대 장소는 미국, 불멸의 신들은 비록 잊혀졌으나 힘은 그대로 가진 채 필멸자들 사이에 섞여 살아간다. 페넬로페 나무는 무럭무럭 자란 다음 베어져 어느 부잣집 별장의 앤틱 문짝이 되었다. 제우스는 여전히 여자들 치마폭이나 들춰 보며 지내고, 예언자 오라클은 마음씨 좋은 그리스 식당 주인에게서 밥을 얻어먹으며 구걸을 한다. 헤라는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남편이 그 새를 못 참고 약속 장소에서 여자와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고 분노 폭발, 대체 뭐라고 속닥거리나 들어나 볼 요량으로 벌레로 변신하여 제우스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아뿔싸, 복잡한 바(bar)에서 벌레로 변신하고 보니 제우스가 있는 곳은 까마득히 멀기만 하고, 벌레가 되어도 여전한 헤라의 매력(설마)에 수컷 벌레들이 마구 꼬인다. 수컷 벌레들에 치여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는데......아무래도......임신했어.orz

Leslie What은 남편의 불륜 상대를 머쉬맬로우로 바꿔버리고, 자기를 툭 치고 지나간 남자를 깡통으로 만드는 등 그야말로 '싸가지' 없는 신들의 모습을 재치있게 그려내면서도, 재기발랄한 불멸자 놀이 뒤에는 고통과 외로움을 사랑의 힘으로 이겨 나가려는 필멸자들의 발버둥을 가벼이 다루지 않는다. '와아, 이게 첫 장편이란 말이야?'라고 생각할 만큼, 넘치거나 부족한 점이 거의 없는 깔끔하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2004년 11월 10일 수요일

책 읽기 좋아하는 당신을 위해

1. 책상에 늘 꽂아두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 없다. 사실 헌책방에서도 안 사 주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2002년판 행정학 객관식 문제집 따위가 꽂혀 있긴 하지만, 읽기 때문이 아니니 질문의 의도에 따르자면 없다는 답이 맞을 듯.

2. 어쨌든 서점에서 눈에 뜨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종류의 책들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 사이언스 올제(Scientific American), Astronomy 같은 과학잡지, 국내에 다시 수입되지 않을 법한 영미 과학소설/판타지.

3.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 올해 뭘 읽었더라. (...)

4. 인생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이 마음에 든다'고 느꼈던 때가 언제인가? 그리고 그 책은 무엇이었는가?
: 중학생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십 번도 더 읽었다.

5.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한눈에 반해 꼬박 석 달치 용돈을 모아 샀었다. 당시에는 (당연히) 이과에 진학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교양과학서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터라 마냥 경이롭고 마냥 좋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을 읽을 다음부터 객체인 자연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에 직접 관련된 일을 해 보는 것도 멋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 잘 아는 것에 대해서일수록 쉽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절감했고.

6. 단 한 권의 책으로 1년을 버텨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는가?
: 표준국어대사전. (반칙?)

7. 책이 나오는 족족 다 사들일 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가?
: Nancy Kress, Jeffrey Ford, Robert Charles Wilson 정도? (살아 있는 사람만 세어서.)

8. 언젠가는 꼭 읽고 싶은데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 칸트, 순수이성비판.
좀 거창한 계획을 들자면, 한문학을 공부해서 박지원의 글을 원문으로 읽고 싶다.

9. 헌책방 사냥을 즐기는가, 아니면 새 책 특유의 반들반들한 질감과 향기를 즐기는 편인가?
: 새 책을 좋아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헌책도 제법 산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다른 독자의 손을 타지 않은 출판사 재고본을 찾는다.

10. 시를 읽는가? 시집을 사는가? 어느 시인을 가장 좋아하는가?
: ⓐ가끔 읽지만 사지는 않는다. 현대시는 전혀 읽지 않고, 194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의 한국 근대시가 눈에 띄면 훑어보는 정도이다. ⓑ 호오를 따질 만큼 많이 읽어 보질 못했다.

11. 책을 읽기 가장 좋은 때와 장소를 시뮬레이션한다면?
: 사람이 없을 때의 중앙도서관 4서고, 늦은 오후. 한참 책을 읽다 어두워 고개를 들면 저녁이 되어 있곤 했다. 지금은 없어졌다.

12. 혼자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주말 오후를 보낼 수 있는 까페를 한 군데 추천해 보시라.
: 글쎄......돌이켜 보면 카페에 한가하게 앉아 책을 읽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냥 길이나 지하철에서 대충대충 읽는 편이라. 게다가 '주말에 조용한 카페'라니, 설령 아는 곳이 있어도 비밀로 할 법 하잖은가!

13. 책을 읽을 때 음악을 듣는 편인가? 주로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듣는가?
: 전혀 듣지 않는다.

14. 화장실에 책을 가지고 들어가는가? 어떤 책을 갖고 가는가?
: 대개 만화책이나 단편집 -아즈망가 대왕은 화장실에서만 열 번은 족히 본 것 같다- 을 가지고 들어가지만, 읽던 책을 그대로 들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15. 혼자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가? 그런 때 고르는 책은 무엇인가?
: 읽는다. 그냥 읽던 책을 계속 본다.

16. 지금 내게는 없지만 언젠가 꼭 손에 넣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
: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전권이나 음악세계의 '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 전권이 있으면 좋겠다. 상황이 닿을 때마다 한 권씩 사다 보니 구멍이 숭숭 났다.

17. e-book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e-book이 종이책을 밀어낼 것이라고 보는가?
: 이동성이 좋아 시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실제로 종이책과 비슷한 값을 치르고 e-book을 사는 편이다. 하지만 눈 외의 다른 보조 기구를 필요로 하는 e-book이 종이책을 밀어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18. 책을 읽는 데 있어서 원칙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 편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과학소설과 판타지를 많이 읽는 편이라, '비문학 주간', '비장르 주간', '만화책 안 읽기 주간' 같은 것을 정해 의도적으로 균형을 맞춘다. 또 영미 원서를 많이 읽었다 싶으면 한글로 쓰인 책을 읽고, 번역서에 치중했다 싶으면 일부러 국내 저자의 책을 집어드는 등 한 쪽으로 쏠리지 않기 위해 꽤 신경쓰는 편이다.
안타깝게도 얼마나 성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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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트랙백.

2004년 11월 7일 일요일

Thomas M. Disch, On Wings of Song


드물게, '진짜 재밌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지.', '대단히 재능있는 작가입니다.', '펑펑 울었다니까.' 따위의 말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그저 훌륭한 책을 손에 넣는다고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감정과 글의 습도가 절묘하게 맞아들어가는 운 좋은 순간, 책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감동적인 글'의 집합을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범주로 들어간다.

Thomas M. Disch의 1979년작, On Wings of Song은 내게 바로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대략 21세기 중반 쯤 되는 미래, 미국은 지극히 보수적인 중서부 농업 지역(Farm Belt)과 자유롭고 타락한 뉴욕 등 대도시 지역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주인공 David는 노래를 금지하고 성욕을 추한 것이라 가르치는 아이오와 주 소도시에서 치과의사 아버지의 외아들로 자란다. 이 세계(혹은 미래)에서, 음악은 영혼의 '비행flying'이라는 특별한 현상을 일으킨다. 부르는 이와 음악이 감응할 때, 노래하는 자의 영혼은 '비행 기계'의 도움을 받아 몸 밖으로 빠져나가 페어리(fairy)가 되는 초월적 경험을 할 수 있다. 뉴욕 같은 곳에서는 합법적으로 이 기계에 앉아 노래를 부를 수 있다지만 데이비드가 사는 아이오와에서는 찬송가 외의 노래는 구경도 못 한다.
그러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데이비드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못 이겨 친구와 몰래 뮤지컬 영화를 한 편 보러 나갔다가 그만 범죄자로 몰려 강제 노역 캠프에서 몇 년을 보내게 된다. 캠프에서 약물과 육체적 학대에 시달리며 그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다시 학교에 돌아와 재벌가 딸과 사랑에 빠지며 그 꿈을 더욱 키워나간다.

디쉬는 장르의 구획 안에 쉽사리 끼워 넣을 수 없는 이 소설에 대해 '내가 쓴 글 중 가장 자전적이다'고 밝힌 바 있다. 굳이 구분짓자면, 나는 이 책을 시련과 사랑과 배신과 슬픔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어느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디쉬가 펼쳐 내는 보수적인 미래와 그 속의 사람들이 지닌 등골 오싹한 현실감, 노래로 페어리가 될 수 있다는 환상, 시작되고, 끝나고, 또 다시 시작하는 사랑, 그 사랑들. 디쉬가 말하는, 아니 보여 주는 인생은 더없이 차갑고, 처절하고, 슬프고, 감히 말하건대 아름답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류의 미감(美感)이 아니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류의 성장이 아니다. 아, 이를 무어라 이름붙일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또 읽은 후에 디쉬가 쓴 다른 책을 여럿 읽었다. 나는 '이 사람 보게' 라고 혀를 끌끌 차고, '역시 디쉬'라고 감탄하고, 때로는 '어이쿠야, 아저씨 무리하지 마셈.' 하고 빙긋이 웃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어떤 글을 쓰든, 어떻게 살든, 누군가 진지하게 이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경건히 답하리라. 이 책을 썼다는 것 만으로도 그를 존경한다고. 그가 작가가 되어 준 것에, 이국의 일개 독자가 지닐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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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 관련 정보: 새 책은 이제 절판되어 사기 어렵지만, 1985년 Bantam MMPB판, 1988년 Carroll&Graf MMPB판과 2003년 Carroll&Graf TPB판을 헌책 사이트에서 싸게는 2~3달러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윗 표지 그림은 2003년 캐롤앤그라프판.

2004년 11월 2일 화요일

SF 10문 10답

1. 처음으로 SF라는 것을 자각하고 읽은 책은?
- 아이디어 회관 문고. 당시 이미 낡고 오래 되어 학급문고 구석에나 있는 책이었지만, 줄거리, 일러스트레이션, 표지 등 모두 굉장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축약 아동본이니 무효라면, Issac Asimov의 'Foundation'.

2. 현재 보유중인 SF소설은 몇권?(외서포함)
- 어림잡아 600권?

3. 좋아하는 SF작가는?
- 50년대의 Theodore Sturgeon, 60년대의 Thomas M. Disch, 70년대의 Ursula K. LeGuin, 80년대의 Nancy Kress, 그리고 90년대의 Robert Charles Wilson.
(어쩐지 딱 한 사람으로 답해야 할 것 같은 질문이니 여기까지만.)

4. 싫어하는 SF작가가 존재하는지?
- 아니, 뭐, 싫어할 것 까지야.;

5. 가장 잘 번역된 SF소설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 어려운 질문이군요. 대개 별 문제 없이 잘 나오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6. 가장 인상적인 SF영화는?
-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 5 '제국의 역습'.

7. 가장 인상적인 SF만화는?
- 서문다미, END (미완결)

8. 국내 SF작가를 꼽을 수 있다면 어느 분?
- 출판 단계까지 간 분만 꼽자면 듀나님, 캔커피님, 적어님 정도?

9.장르와 대안문학의 관계는?
- 당최 뭔 소린지.....

10. 이 10문 10답에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다면?
- 이게 끝?

2004년 10월 29일 금요일

Joe Haldeman, Camouflage

ISBN: 0441011616


문득 최신간을 소개하고 싶어져, 올 8월에 출간된 Joe Haldeman의 신작 'Camouflage'에 대해 간단히 써 본다.

2019년 어느 날. 속을 알 수 없는 단단한 외계 물체가 사모아 해저에서 발견된다. 전직 군인과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조사팀이 사모아에 자리를 잡고 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실험에 들어간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지구에 살았고, 최근 몇백 년 사이에는 인간 행세를 하며 전쟁에도 참전하고(그렇다, 물론 베트남이다) 인간의 감정 비슷한 것도 배운 외계 생명체도 외계 물체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이 외계 생명체처럼 형태를 바꿀 수 있지만 반대로 악의와 폭력성으로 가득 찬 '카멜레온'이라는 다른 외계 생명체도 소식을 듣고, 당연히 사모아로 향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21세기가 되고도 삼 년이나 더 지난 때 쓰여진 것 치고는 정말로 '고전적'이라는 점이다. 1960년에 쓰였다 해도 믿었을 정도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책이라고 해도 '아? 그래?' 하고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안타깝게도 그것은 이 책이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이라서가 아니다. 어렸을 때 아시모프를 읽고, 렌즈맨 시리즈를 보던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고전적(이고 식상한) 설정을 역시 고전적인 유머와 필치로 잘 살려냈기 때문이다. 그래, 한 마디로 이 책은 '안전한 모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게다가 이러쿵 저러쿵 해도 홀드먼은 결국 꽤 솜씨있는 작가 아닌가. 지적인 자극이나 감정적인 부담 없이, 잘 쓰인 옛 책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집어들기엔 안성맞춤이다. (결코 그 이상은 아니다.)

2004년 10월 27일 수요일

Caroline Stevermer, A College of Magics

ISBN: 0765342456

로커스에서 Caroline Stevemer가 얼마 전에 낸 A Collge of Magics 시리즈 둘째 권 'A Scholar of Magics'에 대한, '청소년을 겨냥했지만 19세기 유럽 사회와 인물 군상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한 어른에게 더 재미있을 마법 판타지' 운운하는 호평을 읽고 구미가 동해, 책 값의 두 배에 가까운 우송료를 내고 첫 권인 이 책을 샀다.

속았다. -_-

세계는 동서남북의 지킴이가 유지하는 마법의 균형 하에 운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몇십년 전, 북쪽 지킴이(the warden of North)가 균형을 유지하는 대신 자기 나름의 선을 추구하려고 균형을 깨뜨리면서, 마법의 균열이 생겨났다. 방치해 두면 점점 넓어져 마침내는 세상을 종말케 할 균열이다. 그러나 북쪽지킴이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동서남 세 곳의 지킴이들은 죽지도 못한 채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간신히 균열이 더 커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다.

주인공인 열 여덟 살 고아소녀 Faria는 Galazon의 예비 영주이지만, Galazon을 통치하지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에 손을 대지도 못한 채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Galazon을 대신 통치하고 있는 사이나쁘고 성미 고약한 삼촌은 Faria를 상류층 여학생들이 가는 기숙학교 Greenlaw College로 보내버린다. Greenlaw는 마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여기에서 주인공은 친한 친구, 신분 및 사회관계상 계속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고약한 적, 삼촌이 자기 몰래 딸려 보낸 보디가드 등을 만난다.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21살 생일만을 기다리던 Faria는 학업도 끝내지 못한 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렇게 보아서는 평범하긴 해도 흠 잡을 데 없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가 없다.

우선 주인공의 나이와 저자가 겨냥한 독자의 연령층이 일치하지 않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운 다음, 그 주인공에게 열 너댓살 짜리나 할 법한 언행을 지키니 어찌 재미가 있겠는가. 주인공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짜증을 내거나, 주인공의 나이를 생각하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대사를 심각하게 읇을 뿐이다. 말 할 때는 열 살이고 옷 입고 키스할 때만 스무 살이다. 키스 다 하고 사랑을 속삭이려면 다시 열 두 살로 돌아간다. 이래서야 주인공을 18~21살로 설정한 보람이 없잖아? 이야기의 진행 속도에도 문제가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의 첫 150페이지 - Faris가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 가 이야기 진행상 (전혀 필요 없지는 않아도) 별로 중요하지 않고, 뭘 배우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학교 생활담으로 끈적하게 차 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독자들이 가질 법한, 기숙제 대학과 교양 교육에 대한 환상이라도 충족시켜 주려는 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을 읽고 유치하다는 흠을 잡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YA 도서라고 꼭 유치하라는 법은 없다. 어리다고 감정의 절절함이 덜하고 고민의 진지함이 부족하지는 않다. 잘 쓴 동화책, 아니 잘 쓴 모든 책에는 연령을 초월하는 솔직한 안정감이 있다. 일곱 살이 읽는 그림 동화책에서도 가슴 저미는 감동을 느낄 수 있고, 1318 문고를 읽다가도 눈가를 훔칠 수 있다. 그것이 좋은 책이다.

혹시 마무리가 초중반의 부족함을 덮어줄까 싶어 끝까지 읽었다. 능숙하고 깔끔하게 마무리지어 지기는 하나, 어른도 재미있게 읽을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는 전형적인 '오직 10대 중반만을 겨냥한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주인공이 적에게 "여섯 살 짜리처럼 말하지 좀 마!" 라고 소리치는 부분을 읽으며, "넌 여덟 살 짜리처럼 말 좀 안 할 수 없냐?" 라고 생각했다.

덧: 이 책이 저연령층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저자가 굉장히 한정된 어휘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를 수 있는 상황에서 똑같은 어휘를 반복해서 사용하니 느낌도 살지 않고 글 자체가 지겹다.

2004년 10월 25일 월요일

George R. R. Martin, The Hedge Night

ISBN: 1932796061

Robert Silverberg가 편집한 'Legend'에 실렸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 중편, 'The Hedge Knight'을 만화화한 책이다. 'Amazing Stories'에서 이 책에 대한 글을 읽고 관심이 생겨 살까 말까 망설이던 차에, 라슈펠님께서 가지고 있으시다기에 얼씨구나 빌렸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를 읽지 않아 잘 모르지만, 이 책만 보아서는 판타지가 아니라 역사소설(historical novel)같다. 장르의 경계란 것이 때로 꽤 애매하긴 하지만.

방랑기사의 성장과 로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덩크와 에그 둘 중 최소한 한 명은 '얼음과 불의 노래' 주요 인물일 것 같군. 프리퀄인데도 기승전결이 깔끔하고 일단 만화다 보니 길지 않아 부담없이 즐겁게 읽었다.

2004년 10월 17일 일요일

Thomas M. Disch

[##_1L|XAh366HP6e.gif|width=198 height=192|출처: 공식 홈페이지 _##]
* 196~70년대 뉴웨이브 운동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작가. 과학소설, 판타지, 시, 평론 등 다방면에서 장르의 구분을 초월하는 탁월한 작품을 내놓았다. 판타지와 시 쪽에서는 Tom Disch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다.(황금가지 刊 세계환상문학걸작단편선의 '톰 디쉬'가 바로 이 사람이다) 거침없는 비평과 과격한 발언으로 팬덤에서 악명(?)이 높았으나, 최근에는 뉴웨이브 시절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연한 - 그러나 덜 날카롭지는 않은 - 작품을 발표, 세월에 따라 다듬어진 거장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1940-
* 공식 홈페이지
* 저서 목록

2004년 10월 13일 수요일

On Spec, Spring 2004

Cover: Martin Springett

캐나다 계간 장르잡지 On Spec 봄호.

"Printed Matter" by Cliff Burns
"View of a Remote Country" by Karen Traviss
"Resurrection Radio" by Patrick Johanneson
"Ribbons. Lightning." by Joanne Merriam
"Jumpstart Heart" by Michael Brockington
"Alternate Therapy for your Computer" by Karl Johanson
"Reunion" by Jack Skillinstead
"Seven Years" by Megan Crewe
"Ruby Bloom" by Todd Bryantson
"Stick House" by Catherine MacLeod

2004년 10월 12일 화요일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ISBN 8970134042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하며 읽을 책. 흄의 종교/신앙관에 대한 개설서를 여러 권 읽은 후에 뒤늦게 집어든 책이라,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었다. '어? 이렇게 짧은 글이었어?'란 느낌. 오히려 함께 실린, 지금껏 말로만 들었던 러더퍼드와 빈스의 반박문이 뜻밖의 수확이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결국 '믿는다/믿지 않는다'를 이미 결정한 상황에서 글을 쓰다 보니 조금씩 구멍이 있기는 마찬가지.

흄의 종교관을 이신론적 유신론으로 보는 시각에도 일견 설득력은 있으나, 나는 흄이 노골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나서지 않았던 것은 18세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흄을 불가지론자로 보아도, 그의 철학이 가지는 일관성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흄의 저작에서 신앙심을 찾아내어 그를 옹호하려는 글에서는 흔히 '불가지론자=극단적 회의론자 =/= 조화/자연주의자 = 흄'이라는 논리적 비약이 보인다. [무신론자도 아니고] 불가지론자를 극단적 회의론자라고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지나치게 종교적인 시각. 어쨌든 요령있게 산 덕분에 교수는 못 했어도 목숨과 명성은 건져(농담이 아니다), 신나게 읽을 글을 많이 남겼으니 다행일 따름이다.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의 철학/사상서는 (대체로) 굉장히 즐겁다. 새로운 지식이 환영받고, 새로운 의견이 고개를 들던 사회 분위기가 생생히 느껴져서 절로 가슴이 뛴다. 자연과학의 발달이 그에 실어낸 힘도 굉장하고. 새 시대가 덜컹덜컹 다가오는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달까나. 꼭 한번 가 보고 싶다.(갈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 마.;) 물론 그런 여유의 뒤에는 희생이 있었지만, 그건 다른 곳에서 달리 이야기할 부분이고.......

이태하씨의 해제는 '유학 중에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종교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역자 소개를 보고 우려했던 것에 비해 지극히 무난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연기적과 월드컵 4강 진출을 연결지어 말한 건 너무했어. --;

덧: 아참, 어쨌든 흄의 결론은 기적은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번역 이태하, 책세상, 2003

2004년 9월 26일 일요일

Robert Kirkman & Cory Walker, Invincible 1 : Family Matters

마크 그레이슨은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드래곤이며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수퍼히어로 중 한 명인 Omni-Man아버지와 지구인 어머니 사이의 외동아들이다. 어느 날, 마크는 알바하는 햄버거집에서 쓰레기를 비우러 나갔다가 쓰레기장에 던진 쓰레기 봉투가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드디어 자신에게도 초인적인 힘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자기 유니폼을 맞춘 곳에 가서 초인영웅다운 옷을 마련해 준다. 마크는 Invincible이라는 가명을 정하고 초인영웅 대열에 합류한다.

Image에서 발간중인 인빈서블 시리즈 첫 권인 이 책은, 초인의 일상생활을 지극히 일상적으로 다루어 흔해빠진 초인영웅물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인빈서블도 악당을 무찌르기는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흔한 초인영웅담과 별로 다를 것이 없고 - 사람들이 쉽게 죽고 선악 구도가 단순하다 -, 솔직히 적당히 해치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허술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인빈서블은 여기에 대만에서 드래곤과 전투중인 남편을 티비 뉴스에서 보고 "오늘 저녁은 우리 둘이서 먹어야겠구나."라고 하는 어머니와 식사를 하다 말고 휘리릭 사라졌다 휘리릭 돌아와 수저를 들며 "이집트에 마법 홍수가 나서 막아 주고 오느라.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등장시킴으로서 색다른 재미를 부여한다.

기본적으로 초인영웅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별로 재미가 없을 책이지만, 슈퍼맨, 배트맨, 엑스맨 등 '맨'류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기대를 갖고 다음 책을 지켜볼 만 하겠다. 페이퍼백 단행본으로 2권까지 나왔다.

-
정말 웃겼던 장면 1) 주인공 마크와 초인친구 '아톰이브'(본명 사만다)가 악당을 만났다. 악당이 단번에 두 사람을 알아보고 "마크, 사만다, 왔구나.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하자, 아톰이브가 "어떻게 우리 정체를....?"
악당 왈, "바보냐? 너넨 마스크도 안 썼잖아."

2004년 9월 22일 수요일

Steven Seagle & Teddy Kristianse, It's a Bird

ISBN: 1401201091

DC코믹스의 성인층을 겨냥한 임프린트 Vertigo에서 나온 하드커버.
주인공 스티븐은 만화작가(author)로 - 미국의 만화(그래픽노블)은 국내 만화와 달리 글 쓰는 사람(author), 그림 그리는 사람(illustrator), 글씨 쓰는 사람(letterer)의 역할이 엄격히 나누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 편집자로부터 가장 유명한 만화 주인공 중 하나인 슈퍼맨에 대한 만화를 써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일생 일대의 기회로 생각하고 덥석 받아들일 일이다. 그러나 스티븐은 개인적인 이유로 슈퍼맨에 대한 만화를 그리기 싫어한다. 그는 사실 그 유명한 슈퍼맨 만화를 본 적조차 없다. 다섯 살 적,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병원에서 어른들이 조용히 있으라며 줬던 책 단 한 권 말고는.

이 만화는 슈퍼맨에 대한 이야기이다. 홀로 외계 행성에서 자란 소년, 자신의 정의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남자, 진정한 자아를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외로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이 만화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하는 만화가, 솔직해지지 못하는 애인, 가족 안에 숨겨진 상처에 부끄러워하고 분노하는 평범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던져버리고 모른 척 할 수 없는 운명을 감싸안고 어떻게든 살아 내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의 초인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Steven Seagle(....그 시걸이 아니다.)의 솔직하면서도 잘 정제된 글과 -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 글의 느낌을 놀랄만큼 잘 살려낸 Teddy Kristianse의 그림 모두 일품인, 모르고 지나치기 아까운 따뜻하고 감동적인 책이다. 스포일러를 만나면 좀 곤란할 내용이라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쓰지 않는다. 어쨌든 강력 추천.

2004년 9월 21일 화요일

콘노 오유키,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2 - 황장미 혁명

ISBN 8953253780

서울문화사 출간. 사실 예전에 떠돌던 온라인 번역본으로 3권까지 본 책이다. 1권은 당시 너무 여러 번 읽어(...) 일단 구입을 보류하고 2권부터 정식 번역본으로 재독. 백합물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 라이트 노블은 이 책이 처음이다 - 여학교를 졸업한 내게 이 책은 꽤 공감가는 솔직한 학원물이다. 여학생들끼리의 동경이라든지, 우정이라고 선을 긋기 애매한 관계 등, 감정적으로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이 많아 고개를 주억이게 된다.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즐겁게 읽었다.

2004년 9월 20일 월요일

Christie Golden, Star Trek Voyager #19: Dark Matters Trilogy

#1: Cloak and Dagger
#2: Ghost Dance
#3: Shadow of Heaven

스타트랙 보이저 19편. 총 세 권짜리로, 내용은 왜 세 권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헐렁하다. 특히 3권에서 1권과 2권 내용을 지나치게 친절히-_- 설명하더라. 보이저 초기 에피소드 중 하나의 '웜홀을 통해 과거의 알파 쿼더런트에 있는 로뮬란 과학자와 연락한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그림자 우주(Shadow universe)와 flat universe가설을 끄집어낸다. 다른 차원에 있는 생명이 flat universe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도록 - 팽창하거나 수축하지 않게 - 지키고 있었으나, 그들 중 한 명(?)이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검은물질(dark matter)를 비틀어서 로뮬란과 인간 등등이 사는 우리네 우주를 위협하자 보이저가 해결하려 나선다. 아이디어는 괜찮았고 과학적으로는 무의미했다. 제3의 초인적 존재에 의해 우주가 농락당하고 있다는 설정은 너무나 스타트렉 답지 않단 말이다! 매번 차이기만 하던 해리 킴이 임자를 만나나 했으나 이번 사랑도 결국 잘 되지 않았다. 톰 패리스와 차코테의 그림자 우주 모험담은 읽을 만 했으나, 톰 패리스와 벨라나 토레스의 이별을 좀 더 애틋하게 만들어 주질 않아 유감이었다. 톰 패리스 캐릭터의 가벼운 퇴학생에서 여전히 귀엽지만 책임감 있는 스타플릿으로 발전이 보이저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스타트렉 노벨라이제이션 중 평균에서 살짝 위 정도. "계속 보지, 뭐."라며 다음 권을 집어 들 정도는 된다.

2004년 9월 18일 토요일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Oct/Nov. 2004


"Time to Go" by Michael Kandel
"A Paleozoic Palimpsest" by Steven Utley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by Dale Bailey
"The Angst of God" by Michael Bishop
"Cold Fires" by M. Rickert
"Opal Ball" by Robert Reed

Novelet
"Finding Beauty" by Lisa Goldstein
"Flat Diane" by Daniel Abraham
"The Courtship of Kate O'Farrissey" by John Morressy
"The Little Stranger" by Gene Wolfe
"In Tibor's Cardboard Castle" by Richard Chwedyk

2004년 9월 16일 목요일

리처드 파인만 & 랄프 레이튼, 남이야 뭐라 하건!

ISBN : 8983711523


파인만은 인기가 있다. 훌륭한 물리학자일 뿐 아니라 유명하다. 꽤 잘 생긴 얼굴, 폭탄머리 아인슈타인 만큼이나 강렬한 대중 이미지, 백프로 미국 출신 이론물리학자라는 호감 요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준 덕분에, 파인만은 그가 원했든 그렇지 않든 '팔리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잡탕 책도 번역 출간이 되는 거다.

이 책의 전반 삼분의 일은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과 상당히 겹치는 자잘한 수재 에피소드와, 지금까지 소개된 적은 없지만 유명인의 사생활에 각별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길 그의 첫 결혼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 뒤를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다네요'류의 에피소드와 파이만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로 사료적 가치가 없어 보이는 개인적인 편지 몇 편이 따른다. 그 나머지는 뜬금없게도 챌린저호 폭파 사고에 대한 파인만과 조사단의 문제점 분석 과정과 파인만이 작성한 결과 보고서이다. 그에 더해 과학의 가치에 대한 연설문도 실렸다.

파인만의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만 하다. 또 들어도 재밌는 얘기라는게 있기 마련이고, 1930-60년대 물리학 인물사는 주인공이 누구든 그 자체로 피가 끓는 열혈물이니까. 챌린저호 폭파 사고의 원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도 이 사고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꽤 흥미로웠다. (요약: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하지만, '남이야 뭐라 하건'이 파인만의 사생활과 챌린저호 사건이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두 가지 소재를 한꺼번에 우겨넣은, 초점도 없고 독자도 애매하고 심지어 장르까지-위인전이냐, 자서전이냐, 과학교양서이냐- 불분명한 책이라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파인만의 사생활이 궁금하면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를, 파인만에게서 물리학 강의를 듣고 싶으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나 'Q.E.D. 강의'를 집어드는 쪽을 권한다.


덧: '생각되어진다'같은 표현은 번역자가 틀려도 편집 데스크에서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2004년 9월 15일 수요일

Robert Freeman Wexler, In Springdale Town


대단한 스타는 아니지만 유명한 Scifi 드라마의 오렌지색(.....녹색인가?) 외계인 같은 소소한 역할로 제법 밥벌이를 하던 탤런트 Richard Shelling은 어느 날 프로듀서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던 중에 갑자기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는 파티장에서 나와 서쪽으로 차를 몰다가 안개 낀 도로에서 'Springdale'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한다. 예전에 'Patrick Travis'라는 이름의 조연으로 출연했던 티비 드라마의 배경 마을이 바로 스프링데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낸 리처드는 이 낯익은 이름의 낯선 마을에 들어가고, 작고 소박한 전원 마을에 농장이 딸린 집을 구입하여 아예 눌러앉는다.

변호사 Patrick Travis는 이혼 후 처음으로 스프링데일에 돌아온다. 아내의 불륜으로 삼 년만에 박살난 결혼. 그는 거절하기 힘든 결혼식 초대를 받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전처의 고향이자 결혼생활의 거처였던 작은 마을에 다시 발을 디딘다. 이미 쓴맛을 본 그에게 친구의 결혼식은 별로 축하할 일 같지 않고, 전처를 아는 사람들과의 만남 역시 달갑지 않다. 익숙해서 더 불쾌한 마을에서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하던 패트릭은 막상 기차역에 들어서자 도망치는 것 같은 기분이 싫어 이왕 온 김에 - 전처가 스페인으로 놀러 가서 마주칠 가능성이 없는 김에 - 하루 더 머무르기로 마음을 돌리고 근처 카페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스프링데일의 비밀을 안다고 주장하는, 친구 결혼식에서 얼굴만 봤던 소설가를 다시 만나게 된다.

Robert Freeman Wexler의 첫 번째 출판 단행본인 In Springdale Town은 이 신인 작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머릿말을 써 준 Lucius Sheperd의 음울하고 신비로운 남미 배경 환상 소설에, Jonathan Carroll의 세련된 도시 판타지를 섞어 넣은 다음 미국 소도시로 옮겨가 잔디를 심고 오후 다섯 시의 햇살을 비추어 주면 이 중편이 나오리라. 웩슬러는 아주 살짝 어긋난 현실의 당혹스러운 환상성을 노련하고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리처드가 어딘가 이상한 스프링데일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공포, 패트릭이 아무래도 이상한 스프링데일에서 느끼는 난감함과 호기심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독자를 끌어들인다. 어정쩡하기 쉬운 80페이지 남짓한 분량임에도 딱 맞아 떨어지는 깔끔한 마무리에서도 신인 작가답지 않은 솜씨가 드러난다.

조너선 캐롤이나 루셔스 셰퍼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틀림없이 즐겁게 읽을 책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관심이 아깝지 않을 주목할 만한 작가다. 다만 이 책이 소형 출판사 PS Publishing에서 비싼 사인판 한정본으로 나온 것에 이어, 첫 장편 Circus of the Grand Design도 Prime Books에서 권당 35달러짜리 하드커버 사인본(600부한정)으로 출간되었다(2004/8). 안타까운 일이다. 아쉬운 대로 작가가 FM에 올린 Circus of the Grand Design의 excerpt를 링크해 둔다.Circus of the Grand Design : Excerpt

2004년 9월 10일 금요일

Lemony Snicket, The Bad Beginning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 Book 1)



국내에도 소개된 '위험한 대결'연작. 원서는 11권까지, 국내 번역서는 4권까지 나와 있다.(문학동네 출간) 예쁘장한 러프커팅 하드커버 원서도 서울시내 대형 서점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다.

갑작스런 사고로 고아가 된 세 남매 바이올렛, 크로스, 서니는 법에 따라 얼굴도 본 적 없는 친척집에 맡겨진다. 유산은 있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른이 될 때까지 받을 수 없으니 꼼짝없이 얹혀 사는 신세다. 남매는 상냥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친척집에서 ***하고 ++++한 고생을 하게 된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만약 당신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펴들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책은 불행한 사건으로 시작될뿐더러, 결말 역시 해피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략)'
라는 경고문이 미리 쓰여 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번역서에서는 이 글이 책 안에 수록된 것 같다.

웃어넘길 경고가 아니다. 이 책은 진짜 생고생담이다. 정말로 XXXX하고 $$$$하고 ##하기까지 한 책이다! 무섭고 슬픈 고생담이 싫다면 절대 읽지 마시길. ㅠ_ㅠ

2004년 9월 4일 토요일

Jeffrey Ford, The Fantasy Writer's Assistant and Other Stories

ISBN: 193084610X


2002년에 골든 그리폰에서 나온 Jeffrey Ford의 단편집. 당연히 소개한 줄 알았으나 뜻밖에 엔트리가 없어 뒤늦게 간단히 써 본다.

독특한 상상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 필독 단편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바로 표제작 The Fantasy Writer's Assistant이다. 유명하고 괴팍한 할아버지 환상소설가의 조수로 일하게 된 젊은 화자가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며 한 단계 올라서는 과정을 탁월하게 묘사한 이 중편은, 익숙한 소재로 어떻게 새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가 눈시울을 붉히며 몇 번이나 거듭 읽었던 잔잔하고 따뜻한 단편 Creation도 환상소설 독자라면 반드시 챙겨 읽어야 할 글이다. ('창조'라는 제목으로 황금가지 간 '세계환상소설단편결작선'에 실린 세계환상문학상 단편수상작) 알려지지 않은 카프카의 책이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삼아 작가 본인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 '카프카적인 소설' Bright Morning로 단편집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도 훌륭하다. 혹시 이 책을 구입하여 읽는 독자라면 Bright Morning을 반드시 제일 나중에 읽도록! 좋은 책을 맛있게 잘 읽었다는 성취감을 더해준다.

한 편 한 편이 다 인상깊은, 알차고 환상적인 단편집이다. 책을 직접 사기 부담스런 독자를 위해 아래에 수록작 중 몇 편의 전문이 있는 웹페이지를 링크해 둔다.

Out of the Canyon
Quiet Days in Purgatory
Exo-Skeleton Town
The Far Oasis
Malthusian's Zombie

전체목차

2004년 8월 20일 금요일

[잡기] 요즘 생활

BOOKS에 업댓이 전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내가 아무 책도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기간행물만도 열 권이 넘게 쌓였다. 아니, 이제 스무 권쯤 되는 것 같다. 아시모프지/아날로그/F&SF/EQMM만도 열 권이 넘으니. 암담해라. 이미 읽은 책에 대해 쓰려니 빈 깡통 굴러가는 소리가 나서 대략 조치 않다.

며칠 전에는 한 시간 정도가 비어 살림지식총서의 '법의학의 세계'와 '추리소설의 세계'를 사서 읽었다. 다 읽는 데 40분 걸렸다. -_- 내용도 별 것 없었다. '추리소설의 세계'는 인명이 기억 안 날 때 보기에도 너무 얕았고-살림총서가 대개 그렇지만-, '법의학의 세계'는 1학년 때 저자로부터 들은 3시간짜리 교양수업에서 서울의대 교수의 긍지와 국내의 법의학 현실에 대한 성토를 잘라내고 남은 부분을 정리한 책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법의학을 발전시키자'따위의 결론을 한 페이지쯤 넣을 법도 한데, 본문만 다 쓰고 그 자리에서 끝내버려서 신기했다. 어쨌든 추리소설의 세계보다는 볼 만 하다.

저 너머 가능세계 어디에선가는 나의 상대역이 독서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크립키나 루이스를 읽어 줘야 하는 것이다. 뭐, 과학소설 독자라면 당연히 크립키보다는 루이스를.......

2004년 7월 29일 목요일

아시모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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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홈페이지
아날로그와 함께 미국 과학소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잡지로 꼽히는 미국의 과학소설 월간지. 일 년에 열 권을 발행하고 있다. Ellery Queen's Mystery Magazine과 Alfred Hitchcock's Mystery Magazine을 발행하던 Joel Davis가 'Isaac Asimov's Science Fiction Magazine'이라는 제호로 1977년에 창간했다. 데이비스는 IASF의 성공에 힘입어 데이비스는 1980년에 아날로그지를 사들였고, 이후 한 지붕 아래 둥지를 튼 하드 SF와 과학 중심의 아날로그지와 신선한 감각을 자랑하는 아시모프지는 수없이 많은 과학소설 작가를 발굴해낸다. 특히 1986년부터 작가 출신의 도조와(Gardner Dozois)가 편집을 맡으며 아시모프지는 수많은 상을 휩쓸며 독보적인 지위에 오른다.

아시모프지에서 활동한 유명한 작가로는 Roger Zelazny, William Gibson, Michael Swanwick, Nancy Kress, Kim Stanley Robinson, David Brin 등이 있다. 1992년에 제호를 'Asimov's Science Fiction Magazine'으로 바꾸었으나, 편집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On Sp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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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홈페이지
Diane L. Walton이 편집을 맡고 있는 캐나다의 최장수 과학소설/판타지 계간지이다. 주로 캐나다 작가들이 참여하지만, 미국 등 다른 영어권 작가의 작품이 실리기도 한다. 도서 소개나 비평보다는 소설과 시에 중점을 둔 순수 창작 중심지로, 캐나다 예술협회의 후원 덕분인지 잡지로서는 드물게도 광고가 전혀 없다. 로커스의 2004년 발표에 따르면 연간 정기 구독자는 800명 선이라고 한다. 미국 시장에 가리는 경향이 짙은 캐나다에서 단편 발표의 장이 되고 있는 잡지. 개인적으로는 처음 읽었을 때 기대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감탄한 바 있다.

Michael Swanwick, Cigar-Box Faust and Other Miniatures

ISBN: 1892391074

1892391139


마이클 스완윅(Michael Swanwick)은 영리하고 감각 있는 작가다. 1980년에 데뷔했으면서 '어느 정도 명성을 쌓고 나면 비슷한 스타일을 반복하거나 있으나마나한 앤솔로지나 편집하며 이름을 판다'는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오늘날까지도 날카롭게 날이 선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스완윅은 최근 몇 년 동안 엽편 작업에 열중해 왔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슬로 라이프'(황금가지 SF걸작선; David Hartwell), '래글태글집시-오'(시공사 SF걸작선; Gardner Dozois)도 재미있는 단편이지만, 그보다 스완윅 엽편의 특성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글은 Scifiction에서 이 년여간 격주간 연재한 '마이클 스완윅의 과학소설 주기율표'와 The Infinite Matrix의 'The Sleep of Reason'이다. 이 두 시리즈는 (1)인터넷에서 연재되었고 (2)주제가 있고 (3)굉장히 짧다. 과학소설 주기율표에서는 말 그대로 주기율표의 각 원소가 소재로 쓰였고, TSoR에서는 프란시스 고야의 그림이 옴니버스식 엽편의 소재이자 일러스트레이션이 되었다.

미국의 소형 장르 출판사 타키온(Tachyon Publications)에서 나온 두 권의 챕북, Cigar-Box Faust and Other MiniaturesMichael Swanwick's Field Guide to Mesozoic Megafauna는 딱 이런 식의 엽편을 정리해 모은 단편집이다. 스완윅의 엽편 시대를 총정리하는 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백 페이지 남짓한 'Cigar-Box'에는 모두 80여편의 엽편이 실려 있다. 'Abacedary'는 알파벳 A부터 Z까지를 소재로 삼았고, 'Writing In My Sleep'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꿈에서 쓴 글이다. 이 외에도 태양계의 각 행성에 대한 짧은 이야기, 아시모프지에게 보낸 자기 소개 편지-내가 제일 즐겁게 읽은 글이다- 등 재치있고 귀여운 소설 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가족이나 생활에 대한 짤막한 에세이도 몇 편 들어 있다. 'Field Guide...'는 딱 34페이지 짜리 챕북으로, 공룡을 소재로 한 단편을 모았다. 이 두 권은 하나로 만들었어도 별로 상관 없었을 것 같은 책으로, 실제로 약간 뒤에 나온 'Field Guide...'에는 'Cigar-Box'의 컴페니언 북이라고 쓰여 있다. 차이라면 Field Guide...에는 공룡 일러스트레이션이 여러 장 실려 있다는 정도?

사실 이 두 권의 책과 인터넷 연재물은 그의 여타 장편이나 중편, 단편과 상당히 다르다. 이 책은 우선 읽기가 쉽다. 스완윅의 소설은 내게 늘 어려웠다. 단편집이 주는 재미도 한번에 휘리릭 읽고 지나가면 그만인 종류가 아니었다. 그런 스완윅이 이렇게 일견 가벼워 보이는 글을 내놓았고, 그것이 이토록 재미있으며, 길이와 상관없이 쉬이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놀랍고 기쁜 일이다. (이제 이런 글을 그만 쓰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역시 스완윅'이라며 조금 안심하기는 했지만.;) 아마 이 책들이 스완윅을 대표하는 주요 저서로 거론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소형 출판사에서 나온지라, 몇십 년 지나면 간단한 저서 목록에서는 아예 찾아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잘 쓰인 엽편'을 읽고 싶다면 구입하여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 특히 단편 공부를 하는 습작가라면 참고 삼아 읽어보길 권한다.

amazon.com, alibiris.com등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이 가능하고, 타키온 홈페이지에서도 팔기는 하나 기본 우송료로 무조건 32달러를 매기고 환불도 안 해 준다.-_-; 반드시 서점에서 구입할 것!

2004년 7월 28일 수요일

The Infinite Matrix

* 홈페이지
SF작가 Eileen Gunn이 편집자로 있는 과학소설 웹진. 소설, 비평, 에세이, 데이빗 랭포드의 앤서블 등이 비정기적으로 올라온다. matrix.net의 후원을 받고 있다. 출간 당시에는 하드 SF를 지향했으나 최근에는 그다지 '하드'부분에 구애를 받지 않는 듯.

Scifiction

* 홈페이지
Scifi채널 웹사이트에서 운영하는 과학소설 웹진. 매주 과거의 명작(Classics)과 신작(Originals)이 한 편씩 올라온다. 'The Year's Best Fantasy and Horror'시리즈로 이름을 알렸고 장르 오프라인/온라인 잡지인 Omni의 편집을 맡았던 Ellen Datlow가 편집장으로 있다. scifi채널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어느 오프라인 잡지에도 뒤지지 않는 높은 수준의 작품을 발표하여, 이제 무료 온라인 잡지의 한계를 극복하고 과학소설계의 가장 중요한 정기간행물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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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홈페이지
2004년에 창간 10주년을 맞은 영국의 슬립스트림/판타지/호러 계간지. Andy Cox가 편집자를 맡고 있다. 어떤 장르로도 나누기 힘든 독특하고 개성있는 소설이 주로 실린다. 소위 New Weird에 대한 차이나 미에빌의 글이 처음 실린 잡지이기도 하다. 실리는 글 뿐 아니라 편집과 일러스트레이션, 타이포그래피의 수준이 무척 높다. 그로테스크한 표지가 특히 훌륭하다. 정식 제호는 'The 3rd Alternative'.

Catherine Asaro, 'The Saga of the Skolian Empire'


캐서린 아사로(Catherine Asaro)는 하버드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전공했고, 학위를 받은 후 캐나다와 독일의 연구소에서 일했다. 남편은 나사의 연구원이고 딸은 수학자이다. 과학소설 작가들 사이에 아주 흔하지는 않아도 유난스럽게 드문 이력은 아니다. 하지만 캐서린 아사로는 물리학자인 동시에 발레리나이다. 무용을 전공하기 위해 들어간 대학에서 물리학으로 진로를 바꾼 그는 지금까지도 발레나 재즈댄스를 가르치고 있다. 이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가지 경력이 섞여 등장한 것이 바로 로맨틱 스페이스 오페라, 스콜리안 엠파이어시리즈이다.

지금까지 총 아홉 권이 나온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인류는 드디어 초광속 비행(FTL; faster-than-light)의 방법을 알아냈다. 지구인들은 승승 장구하여 우주로 나간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벌써 인류가 온 우주에 쫙 깔려 있는 것이다. 알고 보니 모든 인류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을 가지고 지구에서 뻗어나온 육천 년 전 인류의 후손이다. 이후 은하는 잠깐 루비 제국(Ruby Empire...이름 참-_-)의 텔레파시들이 지배하는 시기를 맞았으나 이것은 아득한 과거로 이들의 기술은 이미 거의 잊혀졌다. 지구인들이 이제 겨우 지구에서 기어나왔을 때 은하는 루비 제국의 후손들이 상징적인 지위를 가지는 스콜리안 제국(The Skolian Empire)과 역시 루비 제국의 후손이지만 유전자 조작 과정에서 뭔가 꼬여 생겨난 철저한 계급제 사회 에우비안 제국(The Eubian Empire)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다. 지구인들은 뒤늦게 이 둘 사이의 권력 다툼에 끼어서 균형을 유지하며 이득을 얻는 중립 지대 역할을 맡는다.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스콜리언 제국이다. 스콜리안 제국과 에우비안 제국은 대립을 피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바로 루비 제국의 피를 이어받은 스콜리안 제국의 '스콜리안'들이 엄청난 텔레파시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스콜리안이란 스콜리안 제국의 일반인이 아니라, 루비 제국의 후손인 딱히 귀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제국에서 대단한 상징력을 지닌 스콜리안 집안에서 딴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텔레파시 능력은 0부터 10까지로 측정이 가능하고, 10보다 한참 위로 정말정말 드문 사람들이 바로 스콜리안이다. 텔레파시 능력은 열성 유전이고 양 부모 중 약한 사람의 능력을 이어받는 것이기 때문에 드물고, 텔레파시 능력이 강할수록 다른 유전적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건강하고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자는 아주 희귀하다. 아사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0에서 3까지의, 일상 생활에서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는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스콜리안들이 강력한 텔레파시라는 것과 에우비안 제국-이들을 대개 Trader라고 한다-과 대립하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이는 바로 트레이더들의 황제, 에우비안 집안이 루비 제국의 실패에서 비롯된 끔찍한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루비 제국은 다른 문제점을 없애고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자를 만들고 싶어했으나, 그 과정에서 그만 트레이더라는 텔레파시 능력이 있기는 한데 생각을 내보내는 쪽이 망가져서 받아들이는 것 밖에 못 하고, 그나마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만다. 말 그대로 '타고난 새디스트'인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트레이더들은 에우비안이라는 자신들의 제국을 세우고 텔레파시들을 잡아다가 provider라는 노예로 부린다. 이들을 마구마구 괴롭히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프로바이더의 텔레파시 능력이 강하고 고통이 클수록 쾌감이 커진다. 그러니 은하 최강의 텔레파시 집단인 스콜리안 왕족은 에우비안 왕족 입장에서는 최상품의 노예다. 스콜리안 왕족 입장에서 보면 남을 괴롭히면서 좋아하는 에우비안은 인간도 아니다. 이 둘이 당장 부딪히지 않는 이유는 물론 서로 가진 힘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에우비안이 철저한 계급 사회인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트레이더의 핏줄이 강할수록, 즉 그쪽 유전자가 뚜렷할수록 상위 계층이다. 생김새와 텔레파시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스콜리안의 군대가 발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트레이더에게서 생명을 지키려면 강한 군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스콜리안들은 그래서 에우비안보다 신속한 판단과 대응이 가능한 텔레파시 능력을 활용해 우주선과 감응하여 싸우는 엘리트 군대를 끊임없이 양성해낸다.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의 아홉 권은 모두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는 스콜리안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첫 권 Primary Inversion은 스콜리안가문의 딸이자 군인인 Soz와 에우비안 황제가 스콜리안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프로바이더를 '활용', 비밀스럽게 만들어낸 텔레파시 능력자인 아들-즉 황태자- Jai(Jabrial ll)의 사랑 이야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하면 간단하겠다. 씩씩한 소즈가 에우비안에 잡혀가 허수아비 황제 노릇을 하게 된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균형을 깨뜨리고 전쟁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속편 The Radiant Seas이다. 이 두 권 사이에는 평행우주의 다른 과거 지구로 떨어져 사랑에 빠지는 소즈의 조카 이야기, Catch the Lightning과 소즈의 남동생으로 폐쇄된 행성에 난파하여 열 여덟 해를 보내는 Karlic의 이야기 The Last Hawk가 있다. 그 뒤로 역시 그 형제로 시골 행성에서 유배 비슷한 생황를 하는 Havyrl의 사랑담 The Quantum Rose, 18년만에 폐쇄 행성을 빠져나왔다가 에우비안에게 납치되어 버린 칼릭의 Ascendant Sun, 소즈의 고모이자 시언니(소즈의 제일 큰오빠와 결혼했다.)의 Spherical Harmonic, 시간을 과거로 돌려 소즈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을 다룬 Skyfall , 어머니가 전쟁을 일으키고 아버지를 찾아 떠난 와중에 지구에 피신해 있다가 제발로 에우비안 제국에 걸어들어가 황제 자리를 쥐는 소즈의 아들 Jai(Jabrial lll)의 고생담 The Moon's Shadow가 이어진다. 열 번째 권인 Schism : Part One of Triad는 올해 겨울에 나온단다.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는 화려하다. 세 권력간의 미묘한 관계, 각 권력 내부의 더 미묘한 다툼, 전쟁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마음으로 말하는 -텔레파시 능력자라는 설정이 얼마나 로맨틱하게 활용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잘생기고 강한 '귀한 핏줄'들의 사랑이다. 게다가 그냥 사랑도 아니라 초 새디스트들에게 맞서며 지켜야 하는 사랑이다. 아사로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다. 이 시리즈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The Quantum Rose의 네뷸러-인기상 휴고도 아닌 작가협회에서 심사해서 주는 네뷸러!- 수상은 지금까지도 '최악의 선정'이네 어쩌네 하는 말을 듣고 있다. 아사로가 설정한 FTL의 개념은 몇 달마다 한 번씩 SF뉴스그룹에서 말이 되네 안 되네 하는 소릴 듣는다.(흥미롭게도 아사로는 스콜리언 시리즈를 발표하기 전에 여기서 쓰인 초광속 비행 개념을 학회지에 정식으로 발표했었다.) 하지만 재미있다. 재미있는데 어떡하나. 재미있고 부담없는 사이언티픽 로맨스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특히 양자역학의 주요 개념을 로맨틱하게 해석한 The Quantum Rose의 챕터 제목 해설은 거의 로맨틱 사이언스 개그라 할 만 하다.(본편보다 더 웃겼다) 이 시리즈는 로맨스 쪽에서 사파이어 상 등을 받기도 했다.

반드시 출판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운명적 사랑부터 근친상간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내키는 커플을 골라잡으면 된다. 매 권마다 아사로는 이해하기 충분할 만큼 설정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과학소설 뉴스그룹에서 사파이어 수상작인 Catch The Lightning을 소프트 포르노나 다름없다고 비추하고, The Last Hawk를 짜임새가 있는 편이라고 추천하는 사람도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저 두 권은 오십 보 백 보이지만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The Last Hawk가 낫다고 본다. 소즈의 이야기 두 권도 재미있고, Ascendant Sun은 The Last Hawk과 바로 이어지는 속편인데다 소즈의 아들 Ja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전체 흐름을 따라가고 싶으면 함께 읽는 편이 좋다. Sperical Harmonic에 대해서는 별반 기억나는 것이 없다. Skyfall은 정말 재미없어서 억지로 읽었고, The Moon's Shadow는 SM이라서(으응?) 전권보다 나았다. 근작으로 올수록 확실히 긴장감이 떨어진다.


최근 아사로의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솔직히 Terry Goodkind의 시리즈 따위가 연상된다. 가슴이 아플랑 말랑 하누나. 특히 Skyfall에서는 좀 더 좋은 이야기꾼이 될 수 있는 작가가 시리즈물로 인기를 얻으면서 편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장르사적으로 유의미한 책, 두고두고 마음의 양식이 될 책을 찾는다면 이 시리즈는 잊는 편이 낫다. 하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신나는 사랑 이야기, 재밌게 낄낄거리고 돌아서서 잊어버려도 좋은 책을 원한다면, 왼손에는 이 책을 들고 오른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느긋하게 앉아 빈둥거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2004년 7월 27일 화요일

Jonathan Carroll, Sleeping in Flame

ISBN: 0679727779


배우인 워커 이스터링(Walker Easterling)은 아내와 이혼 후 비엔나에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모델 일을 하는 대단히 매력적인 미인(Maria York)과 마주치고, 일종의 스토커에게 쫒기고 있던 그녀를 도와주며 인연을 맺는다. 둘은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한참 사랑에 빠진 워커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는 '미래'를 본다. 사건이 일어날 것 같으면 '감'을 느낀다. 조너선 캐롤(Jonathan Carroll)의 다른 소설들처럼 도회적인 로맨스로 출발한 'Sleeping In Flame'은 서서히 복잡하고 무서운 환상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비엔나의 진한 커피와 개성있는 친구들과 그냥저냥 굴러가는 삶을 즐기던 워커는 이제 잘 이해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사건에 맞서 자신과 마리아를 지켜야 한다. 그는 강력한 샤먼인 Venasque를 소개받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전생을 알게 된다.

식상하기 그지없는 소재를 쓴 흔한 판타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캐롤이 엮어가는 이 비틀린 동화는 조금도 식상하지 않다. 식상하기는 커녕 깜짝 놀랄 만큼 새롭기만 하다. 스토커의 위협, 사랑의 애틋함, 생존의 절박함, 그에다 전생의 비밀까지......일단 읽어 보라는 말밖에 못 하겠다. 이런 새로움은 일개 독자가 졸렬한 글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먼저 소개한 The Bones of The Moon을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Sleeping in Flame을 호러/스릴러에 친숙한 사람에게 권해 왔지만 사실 호러라고 지레 겁먹을 것 없는 책이다. 차곡차곡 쌓인 긴장도 클라이막스에서 시원하게 풀려나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위 표지 사진의 빈티지(Vintage)판 페이퍼백이 정말 빈티나게 허접하다는 것이다. 저 촌스런 주황색 표지는 실제로 보면 '대체 이 따위로 표지를 써서 책이 팔리길 바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형편없다. 게다가 종이는 또 얼마나 구질구질한지! 머리 위로 들고 읽으면 코가 간질간질하고 기침이 난다. 그런 주제에 값은 보통 트레이드페이퍼백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으니 마음을 놓으시라.(나처럼 빈티지판을 가진 사람에게는 억울한 소식이지만) 토어(Tor)에서 2004년 가을/겨울중에 이 책을 트레이드 페이퍼백으로 새로 출간겠다고 발표했다. 토어라면 걱정없다. 어떤 표지가 되든 지금 것보다야 나을 테고, 종이도 토어에서 내놓은 캐롤의 다른 TPB와 비슷할 터이니 아마 괜찮은 책이 될 것이다.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굉장한 두껍지 않은-300페이지쯤?-책이니, 토어 판이 나오거든 꼭 읽어보길 권한다.

Jeffrey Ford

[##_1L|XXA1aJnUkC.gif|width=115 height=176|Chris Carroll(BookPage)_##]
* 세련된 필치가 돋보이는 미국의 판타지 작가. 1980년대부터 활동했으나 장편 The Physiognomy로 1997년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최근 휴고, 네뷸러, 로커스, 세계환상문학상 등에 연이어 후보로 오르며 뒤늦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1955-
* 공식 홈페이지
* 저서 목록

2004년 7월 26일 월요일

Gardner Dozois

[##_1L|XUwihbDsQv.jpg|width=235 height=188| 사진: Beth Gwinn(Locus) _##]* 과학소설 작가로 데뷔, 네뷸러상 등을 수상하며 재능있는 신인 작가로 주목받았으나 곧 편집자로 전향하여 아시모프지(Asimov's Science Fiction)에서 열 여덟 해 동안 다양한 앤솔로지와 잡지를 편집하며 명성을 쌓았다. 탁월한 감식안과 장르의 경계에 대한 유연한 시각으로 아시모프지뿐 아니라 과학소설의 확장에 기여했으며 수없이 많은 상을 받았다. 최근 아시모프지의 편집장 자리를 내어 놓고 휴식 및 집필 활동에 들어갔다. 1947-
* 저서 목록

Nancy Kress, 'The Beggar Trilogy'

ISBN: 0380718774

/ 0312857497

/ 0812544749


이 블로그의 첫 게시물에서 나는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단편으로 낸시 크레스(Nancy Kress)의 'Out of all them bright stars'를 꼽았다. 사실 이 단편을 읽었던 날 오후에 나는 낸시 크레스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중편을 한 편 더 읽었었다. 침대에서 빈둥거리다가 별 생각 없이 펼친 도조와(Gardner Dozois)의 연간 과학소설 걸작선 9권 맨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어정쩡하게 침대에 기댄 채로 그 중편을 단숨에 읽고 - 고쳐 앉을 틈도 없었다- 저자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낯이 익었다. 책장으로 걸어가 낮에 읽은 Future on Ice의 뒷표지를 훑어 보았다. 아까 그 작가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글을 둘이나 만난 그 날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로 내가 낸시 크레스의 이름만 실려 있으면 어떤 단편집이든 무작정 모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 때 내가 읽었던 글이 바로 낸시 크레스의 대표작, 휴고&네뷸러&스터전 수상작인 Beggars In Spain(1983)이다.

Beggars In Spain은 유전자 조작을 이용해 원하는 아이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처음 도입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날씬하고, 똑똑하고, 건강한 딸을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다. 지능이나 체력이야 새삼스럴 것이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아이, 레이샤(Leisha Camden)는 또한 다른 부분이 조작된 최초의 인간들 중 한 명이다. - 레이샤는 잠을 자지 않는다. Sleepless라고 이름붙여진 이 아이들은 곧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를 주도해간다. Sleepless들은 더 총명하고, 더 건강하고, 더 뛰어나다. 남들이 자는 사이에 공부하고 남들이 깨어 있을 때에도 일하며, 잘 지치지도 않는다. 도저히 보통 사람(Sleeper)들은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런 극소수의 사람들이 결국 다수에게서 비난과 악의와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욕심으로 자기 아이를 Sleepless로 만든 부모가 자지 않고 보채는 애를 버리거나 죽이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Sleepless들은 Sleeper들을 피해 자기들 끼리의 낙원이자 피난처를 만들어 보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를 내키지 않는 눈으로 보는 Sleeper들과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Sleepless들끼리도 마찰이 생긴다.

낸시 크레스는 이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듬어냈다. 어설픈 거대 담론을 끄집어내기보다는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나 버린 사람들이 겪는 삶, 사랑, 갈등을 세심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근본적인 면에서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레이샤는 총명한 젊은이이자,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Sleeper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인류이자, 사랑에 고민하는 아가씨이자, 레이샤 때문에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평범한 Sleeper 자매와의 관계를 난감해 하는 여동생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통해 '신인류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웃고 울며 공감할 현실이 된다.

낸시 크레스는 이후 Beggars In Spain을 장편으로 늘이고, 속편 Beggars and ChoosersBeggar's Ride를 발표하여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거지 삼부작(The Beggar Trilogy-혹은 Sleepless Trilogy)'을 완성했다. 속편은 솔직히 아쉬운 수준이다. 단편을 늘인 장편이 대개 그렇듯 이야기의 힘이 빠지고 거대 담론이 끼어들면서 3부작은 작가가 주체하지 못하는 제 8차원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중편 Beggars In Spain은 뒤에 군더더기를 붙여버린 낸스 크레스의 명백한 실수와 상관없는 걸작이다. 중편을 읽고 나면 틀림없이 속편이 읽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굳이 궁금하면 읽어도 별 상관은 없다. 비추천할 만큼 형편없는 글이 아니고, 낸시 크레스의 '사람이야기' 재주는 여전하니까. 하지만 너무나 훌륭한 중편에 비해 그 명성에 기댄 범작 티가 완연한 뒷 두 권을 굳이 찾지는 말기를 권한다.

Beggars In Spain의 중편 원작은 단편집 'Beaker's Dozon', 제임스 모로우(James Morrow)가 편집한 'Nebula Showcase' 27권, 내가 이 글을 접한 책인 가드너 도조와의 'The Year's Best Science Fiction: Ninth Annual Collection', 데이비드 하트웰(David G. Hartwell)의 'The Hard SF Renaissance'와 'The Science Fiction Century', 그레고리 벤포드(Gregory Benford)의 'The New Hugo Winners' 4권 등에 실려 있다. 이 외에도 아마 여러 단편집에서 찾을 수 있을 테고, 인터넷 이북 서점 fictionwise.com에서도 파일을 팔고 있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하기 쉽다지만, 감히 단언하건데, 이 글에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Peter Crowther

[##_1L|Xdn5N3gFrh.jpg|width=191 height=167| 사진출처: The Alien Online_##]
* 영국의 소설가, 편집자. 1970년대에 좋은 단편을 여럿 발표해 주목을 끌었으나 이후 음악과 문학 분야에서 주로 비평가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1999년에 PS Publishing이라는 소형 출판사를 설립, 훌륭한 판타지/호러 중편집을 여럿 내놓으며 편집자로서 새로이 이름을 알리고 있다. 1949-
* 작품 목록

Michael Swanwick

[##_1L|XQYb6jQkn3.jpg|width=132 height=190|사진출처: Tachyon Pub. _##]
*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폭넓은 작풍을 자랑하며 포스트 사이버펑크부터 판타지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최근 몇 년 간은 엽편에 전념해 왔으나, 최근 장편 작업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1950-
* 공식 홈페이지
* 저서 목록

2004년 7월 25일 일요일

아날로그

[##_1R|XamPFFyUi1.jpg|width=123 height=195| _##]
* 공식 홈페이지
미국의 유서깊은 과학소설 잡지. Analog Science Fiction and Fact가 정식 명칭으로, 존 캠벨 주니어가 창간한 'Astounding'을 전신으로 한다. 아날로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소개]글을 참고할 것.

Catherine Asaro

[##_1L|XbURyDxktv.gif|width=184 height=179|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_##]
*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본래 무용을 공부했으나 물리학으로 관심을 옮겨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맨스 요소가 강한 과학소설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고, 최근에는 판타지(로맨스)도 발표하고 있다. 1955-
* 공식 홈페이지
* 저서 목록

Nancy Kress

I'd thought I was a cynic. But cynicism is like money: somebody else always has more of it than you do.

- in 'Beggers and Choosers'


[##_1L|XSbzSBUORr.jpg|width=235 height=180| 사진: Beth Gwinn (Locus) _##]
*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판타지로 데뷔했으나 곧 과학소설로 전향, 인간(특히 여성)의 심리를 깊이있게 묘사한 중단편으로 이름을 알렸다. 1948 -
* 공식 홈페이지
* 저서 목록

Robert Charles Wilson

"Why waste time on me, then?"
"You're no more or less important than any of the rest. You matter, Guilford, because every life matters."

- in 'Darwinia'


[##_1L|XYcE0Ik4sz.jpg|width=200 height=167| 사진: Andrew Specht_##]
* 미국 출신이나 캐나다로 이민한 과학소설 작가. 특히 대체역사 소설을 다수 발표했다.
* 공식 홈페이지
* 저서 목록

Jonathan Carroll

In order to survive, you must learn to live without everything. Optimism dies first, then love, and finally hope. But still you must continue. If you were to ask me why, I would say that even without those fundamental things, the great things, the hot-blood-in-the-veins things, there is still enough in a day, in a life, to be precious, important, sometimes even fulfilling.

- in 'The Marriage of Sticks'


[##_1L|XfKT7Xwakg.jpg|width=241 height=207| 사진: Beth Gwinn (Locus 2003) _##]
* 미국 출신으로 현재 비엔나에 거주중인 판타지/호러 작가. 호러로 데뷔했으나 근작으로 올수록 판타지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1949-
* 작가 홈페이지
* 저서 목록

2004년 7월 13일 화요일

[잡기] SF/ F 소식 & 잡담

1. Wishlist

Peter Crowther의 단편집 Songs of Leaving 아마존링크 : 분명히 리뷰를 읽었는데 어째서 미출간이냐! 과학소설 성향이 강한 단편이 다수 수록되었단다.
John Crowley의 단편집 Novelties & Souvenirs : Collected Short Fiction 아마존링크 The Locus Award 아마존링크 : 어느새 출간.

Amy Thomson, Storyteller 아마존링크
Howard Cruse, Wendel All Together 아마존링크 19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게이 코믹 스트립을 모았다.

2. 이번 Strange Horizons에 재미있는 칼럼이 떴다. The SciFi Superiority Complex

3. scifiction 클래식 코너에 딜레이니가 올라왔다. 링크

2004년 7월 11일 일요일

James Morrow, Towing Jehovah

ISBN: 0156002108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시스틴 성당 천정화에는 구름 위에 둥둥 떠서 흰 수염을 휘날리는 분이 등장하시니, 그분이 바로 여호와니라. 하지만 실제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 중 절대자가 인간, 그것도 앞머리가 살짝 벗겨진 백발의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제임스 모로우(James Morrow)의 유쾌발칙한 소설 '하나님 끌기'는 딱 그 그림같이 생긴, 키가 '2마일(3200m)'에 달하는 신이 정말 '하늘 위'에 살고 '있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왜 과거형인가, 그야 물론 이 신이 원인불명의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길이가 2마일, 무게는 당연히 몇십 톤에 달하는 시체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태평양에 둥둥 떠다니게 되었고, 천사들은 이 창조자의 시체를 썩기 전에 북극으로 보내 얼려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고 싶어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공명하는 - 그러니 함께 죽게 되는 - 천사에게는 장례를 치를 시간이나 힘이 없다. 그래서 천사들은 곳곳에 흩어져 장례를 치를 사람들을 모은다.

Anthony Van Horne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 유조선을 운항하는 유명한 선장이었으나, 잠깐 선교를 비운 사이에 유조선 침몰이라는 큰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환경운동가들의 적이고, 바다의 불운이고, 위대한 선장이자 천상 바닷사람인 아버지로부터까지 비웃음을 당하는 불쌍한 아들이 된 비참한 전직 선장(현직 백수)이다. 그는 사고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밤이면 비누로 몸을 씻고 또 씻고, 꿈 속에서는 기름 범벅이 되며 살고 있다. 그런데 평소처럼 몰래 예배당 연못에서 몸을 씻고 나오던 밤에, 난데없이 하나님의 시체를 끌 배의 선장을 맡으라는 천사 라파엘을 만난다.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게다가 등 뒤로 보이는 저것은 틀림없는 후광! 얼떨떨한 전직 선장 앞에서 라파엘은 아버지에게 다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Thomas Ockham 신부는 과학적인 사고를 자랑으로 삼는 성실한 성직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바티칸의 부름을 받은 그는, 바티칸 지하 비밀 방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다. 가브리엘에게서 하나님이 죽었고 북극에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들은 교황은 바티칸의 돈으로 배를 마련하고, 천사들이 시킨 대로 Van Horne을 선장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카톨릭의 책임자로 Ockham신부와 Maria 수녀를 보낸다. 또한 현대는 과학의 시대, 바티칸에게는 또다른 잠정적인 목표가 있으니, 바로 바티칸의 수퍼컴퓨터 OMNIVAC 이 계산한 시일 안에 하나님의 시체를 북극에서 얼려 그 뇌세포를 보존하여 장래에 하나님의 부활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체가 썩기 전에 북극까지 가야 한다.

선원을 모집하고 바삐 출발한 Carpo Valparaiso호. 물론 선원들은 유조 업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바티칸과 배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때가 되어 실제 배의 임무를 알게 된 선원들은 혼란에 빠지며, 항해 중에 우연히 구출한 여자 Cassie Fowler도 말썽이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다 말하면 독서의 재미를 빼앗는 꼴이 될 터이니 이쯤에서 그만둔다. 이 책은 (실제 종교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특정 종교를 비웃거나 비난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이 책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이 있든 없든 결국은 이어지는 인간의 삶이다. 그 속에 담긴 괴로움과 기쁨, 갈등과 사랑, 무엇보다도 충만하지 않을지언정 사라지지도 않는 희망을 모로우는 놀랄 만큼 재치있고 솔직하게, 단단한 심지가 살아 있으면서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풍자에 담아낸다. 굉장히 심각하고 위험할 수 있는 소재를 "야아, 이 발칙한 사람 좀 보게나." 하고 낄낄 웃게 다듬어 내놓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제임스 모로우는 성경을 비튼 판타지를 여러 권 썼다. Blameless in AbaddonThe Eternal Footman로 이어지는 삼부작의 첫번째 편으로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 외에도, 시험용 인공자궁에서 태어나 등대지기의 딸로 자라는 하나님의 딸(즉 예수의 여동생)이 주인공인 Only Begotten Daughter(세계환상문학상 수상작), 제목만으로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는 단편집 Bible Stories for Adults등이 나와 있다. 멋진 풍자 판타지를 읽고 싶다면 (그리고 성스러운 옛날 이야기의 비틀림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느 책이든 좋으니 한 번 읽어 보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국내에 소개되기를, 이왕이면 직접 소개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2004년 7월 7일 수요일

[잡기] SF/F 소식

1.

로커스 상 결과 발표


2. The Third Alternative 여름호 도착. 인터뷰 기사는 Jonathan Lethem, Russell Hoban. Graham Joyce의 게스트 에디토리얼이 마음에 든다. "New Weird is really just the same Old Peculiar we’ve been getting smashed on for years. It’s the delicious, dark morbidity, you see."
표지 뒷면에 앤디 콕스가 편집하는 인터존 194호 전면광고가 실렸는데......원래 하던 대로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어? 이건 광고만 봐서는 완전 TTA-2잖아! 로고 디자인도 바뀌었어! 이게 뭐야! ㅠ_ㅠ

3. 좀 늦었지만 로커스 5월호에 실린 소식 몇 가지. Catherine Asaro가 새 스콜리안 엠파이어 소설을 토어에 팔았다. '반지의 제왕'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과학소설과 판타지의 영화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이, 로봇'의 이번 개봉에 맞춰 밴텀에서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로봇 시리즈의 하드커버 신판을 내놓는단다. 로봇 시리즈 뒷편의 영화화 여부는 불확실한데, 그 이유는 '아이, 로봇'은 20세기 폭스사가 만들지만 그 외 로봇 시리즈(The Caves of Steel, The Naked Sun, The Robots of Dawn)의 권리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파라마운트사가 2년 전에 사들인 버로우의 'A Princess of Mars'(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2006년 개봉 예정. 파라마운트&드림웍스가 함께 제작하는 웰즈의 'The War of the Worlds'의 주인공은 탐 크루즈, 감독은 아마도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 예정 영화로는 알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 닐 게이먼의 '코렐라인', 필립 풀먼의 '황금 나침반', 피터 비글의 '마지막 유니콘', 로날드 달의 '찰리와 초컬릿 공장', 더글러스 아담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레이 브레드버리의 '화씨 451'등이 있다. 실제로 몇 편이나 제작될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이 기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위 로커스 SF부문 수상작인 Illum도 이미 영화 판권이 팔렸고.

4. 프링글이 인터존을 정리한 이유가 이혼이었네. 아내와 함께 만드는 잡지의 담보였던 집이 이혼하면서 없어졌기 때문이란다.

5. 리즈 윌리엄스 인터뷰 중

'Whatever we do, we're always (for want of a better word) androcentric, in that we always feel we have a right to control the environment. This is not a particular criticism, because it's natural for us to want to do that. But it's controlling either in the sense of exploiting it or in the sense of sustaining it for our future purposes. The world doesn't care."

2004년 7월 2일 금요일

[잡담] '신들의 사회' 신판 하드커버


EOS에서 이번에 내놓은 신판 하드커버. 우-하하하하하. 개인적으로 '신들의 사회'라는 번역 제목이 이 작품의 인기에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는 터라 ㅡ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미륵보살'이라는 책을 상상해 보라! ㅡ , 이런 노골적인 표지를 보니 엄청 재밌다. 캐서린 아사로의 Primary Inversion 일어판 표지(아래)에 버금가는 걸작이구먼.

Kate DiCamillo, The Tale of Despereaux



2004년 뉴베리 수상작.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Light is powerful.
2. Soup is wonderful.
3. Forgiveness is powerful and wonderful.
4. Love is powerful, wonderful, and ridiculous.

2004년 6월 29일 화요일

간단 소개 4



1.The Colour of Lights, Terry Pratchett Light인지 Lights인지 헷갈리는데 찾아보기 귀찮아서 통과. 디스크월드 두 번째 권이다. 첫 번째 책을 뛰어넘고 읽지 않았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듯.

2. Year's Best SF, David G. Hartwell ed. 추천 James Patrick Kelly의 "Think Like a Dinosaur".

3. Mars Crossing, Georffrey A. Landis 랜디스의 첫 번째 장편 소설. 화성 풍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아래 랜디스 단편집 소개에도 썼듯, 랜디스는 직접 화성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나사 글렌 연구소 사람이다.) 자세한 소개를 써 두었으니 내일쯤 올려야지. 2000년쯤에 나온 책인데 얼마 전에 보니 절판되어 놀랐다. 꽤 오래 팔릴 줄 알았는데......

4. Gateway, Frederik Pohl 프레데릭 폴의 고전. Heechee 시리즈의 첫째권으로 흥미진진하고 화끈한 스페이스 오페라(응?)다. 힛치라는 오래 전에 번성한 외계 문명이 우주에 남겨둔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먼 우주로 나서는 인간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 이 우주선에는 탑승자가 목적지를 정할 수 없다는 엄청난 문제점이 있다. 잘 날아가면 한 마디로 대박이지만 잘못하면 끝장이다. 국내 서점에서도 구입 가능.

5. Mars Probes, Peter Crowther ed. 소개한 책.

6. Spherical Harmonic, Catherine Asaro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 옆 The Radiant Seas에 그려진 여자주인공의 이모이자 새언니 부부(즉 조카이모 커플)가 주인공이다.

7. The Radiant Seas, Catherine Asaro 스콜리안 엠파이어 2권. 1권과 이어진다. 로미오를 데리고 외딴 행성에 도망간 줄리엣은 애를 넷이나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그만 위치가 발각되고, 로미오는 자기 가족(!)에게 납치되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자 역시 대장 자리에 오른 줄리엣이 적진에서 고생하는 로미오를 데려오기 위해 은하 규모의 전쟁을 벌인다. -ㅅ-

8. Station of the Tide, Michael Swanwick 스완윅의 91년작. 너무 어려워서 고생했던 기억이......

9. Good Omens, Neil Gaiman & Terry Pratchett 멋진 징조들, 시공사

10.Year's Best SF 8, David G. Hartwell ed. SF걸작선, 황금가지

2004년 6월 26일 토요일

간단 소개 3



재미 붙였다. 간단 소개 3번.

1. Resurrection, Arwen Elys Dayton 순전히 작가의 이름을 보고 산 책이다.; 신인작가의 데뷔작으로 이래뵈도 저자 사인본. LotR의 엄청난 팬인 부모가 이름을 아르웬이라고 붙였단다. 책의 분위기나 줄거리 소개를 보면 스타트렉 노벨라이제이션 풍인데 실제로는 어떨지. 읽어 봐야지 하면서도 우선 순위에서 줄곧 밀렸다.

2. Prelude to Space, Arthur C. Clark 말이 필요없는 고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적이 있으려나? 교보문고 할인 가판대에서 2천원에 팔길래 샀다.

3. Primary Inversion, Catherine Asaro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 첫번째 권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터프한 줄리엣과 유약한 로미오의 텔레파시 사랑!

4. The Last Hawk, Catherine Asaro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 중 제일 읽을 만 하다는 평을 듣는데, 나는 이 마을 저 마을 건너다니며 계속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 내 취향을 빼고 보면 시리즈 중 가장 괜찮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한다.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 페이퍼백은 yaroX님께서 주신 책이다. 흐흐.

5. Mort, Terry Pratchett 테리 프랫챗의 디스크월드 시리즈. 죽음 오빠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웃음과 감동이 있는 결말! 디스크월드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는 축에 든다고들 하더라. 나는 디스크월드 시리즈를 두 권밖에 읽지 않아 전체 시리즈 중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재미있기는 하다.

6. Year's Best SF 4, David G. Hartwell 하트웰 걸작선은 절반만 건진다는 생각으로 산다. 추천작을 고르자면 낸시 크레스의 'State of Nature'과 메리 순 리의 'The Day Before They Came'. 특히 State of Nature은 아직 크레스의 빛이 바래기 전에 나온 상당한 수작이다.

7. Field of Dishonor, David Weber아너 해링턴 시리즈. 내 책이 아니라 에라오빠 책이지만 SF/F 카테고리이니 번호를 매겼다. 아너 해링턴 시리즈도 번역해서 나올 듯 말 듯 하더니 글쎄...혹시 기대하고 있는 분이라면 기대를 버리시길.;

8. Year's Best SF 7, David G. Hartwell 추천작은 테리 비슨의 'Charlie's Angel', 스완윅의 'Under's Game', 제임스 패트릭 켈리의 'Undone'(강추). 크레스의 컴퓨터 바이러스는 크레스의 평균 수준에 미달하는 작품이고, 시몬 잉즈의 러시안 바인은 너무나 하트웰답지 않은 선택이라 황당하다.

9. American Gods, Neil Gaiman 상 많이 탄 책인데 재미가 없어서 보다 말았다. ~_~ 음.....정확히 하자면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읽기가 귀찮아지는 책이다.

10. Genometry, Jack Dann & Gardner Dozois ed. 할 말 없음입니다요. (먼 산)

11. Isaac Asimov's Robots, Gardner Dozois & Sheila Williams ed. 아시모프의 로봇 패러디 등 관련 단편 모음집. 웃긴다. 특히 잘난 척 하는 아시모프가 등장하는 작품이 압권. 참고로 셰일라 윌리암스는 아시모프지에서 오랫동안 일한 편집자로, 이번에 도조와가 그만두면서 편집장 자리를 넘겨받았다.

12. The Short Victorious War, David Weber 7과 함께 빌렸던 책. 제목이 스포일러 -_-;

2004년 6월 25일 금요일

간단 소개 2



1. Whie Apples, Jonathan Carroll 조너선 캐롤의 최신간이다. 정말 캐롤은 근간 쪽으로 올수록 엔딩이 지리멸렬해서......(이렇게 말하면서도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정신없이 읽게 만든다는 점이 바로 캐롤의 능력(?)이지만)

2. Swan Sisters, Ellen Datlow/Terry WIndling 고전 동화를 재해석한 판타지 단편 모음집이다. 청소년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알려진 줄거리를 단순히 비틀지 않고 소재만 따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추천. 거울에 번역하여 올렸던 라푼젤 이야기의 재해석 '다락방 소녀'도 여기 실렸던 글이다.

3. New Skies, Patrick Nielson Hayden 역시 과학소설 입문 청소년을 겨낭한 단편집으로, 1980년대 이후 발표된 짧은 단편을 모았다. 단편집이 늘 그렇듯 '이 글은 왜 실었을까'싶은 작품이 없지는 않지만 입문자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다. 절반 쯤은 클래식, 절반 쯤은 편집자가 취향에 맞춰 발굴(?)한 작품.

4. Bios, Robert Charles Wilson 리뷰를 올린 책.

5. Starlight 3, Patrick Nielson Hayden 아래 게시물에 쓴 오리지널 앤솔로지 3권. 표지가 정말 예쁘다.

7. Maximun Light, Nancy Kress 낸시 크레스의 장편. 불임률이 너무 높아져 젊은이가 한없이 귀해진 근미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좀 실망했으나 최근 낸시 크레스의 작품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니 이 때가 훨씬 나았다. -_- 요새 크레스는 감이 떨어진 건지 정말......

8. Down and Out in the Magic Kingdom 코리 독토로우의 데뷔 장편.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소설 전문을 구할 수 있다. 디즈니 랜드화(?)한 근미래 사회를 독특하게 그려냈다.

9.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Ted Chiang 테드 창 단편집. 행책에서 곧 나올 예정이니 소개는 생략해도 되겠지. 표제작 Stories of your life Starlight 3의 맨 앞에 실리기도 한 'Hell Is the Absence of God'외에는 다 읽을 만 하다.

10. The Perseids and other stories, Robert Charles Wilson 로버트 찰스 윌슨의 단편집. 장편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장편이 과학소설+판타지라면 이 단편집은 판타지 + 호러. 작가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던 책이다.

11. Darwinia, Robert Charles Wilson 소개한 책. 애써 깨끗한 하드커버를 구했는데, 그만큼 의미있는 책이어서 기뻤다. 한 마디로 말해 탁월하다.

12. The Chronoliths, Robert Charles Wilson 내가 제일 처음 읽었던 윌슨의 장편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작가에게 반해 윌슨이라면 절판된 작품까지 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크로놀리스'라는 거대한 기둥이 세계 곳곳에 나타나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뒤죽박죽 얽혀들어가는 모습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다음에 자세히 소개해야지.

13. The Moon's Shadow, Catherine Asaro 캐서린 아사로의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8번째인가 9번째 책으로, 하이톤들의 사회를 다룬 덕분에 이 시리즈 중 가장 SM스럽다. (낄낄)

2004년 6월 22일 화요일

간단 소개


예전처럼 읽은 책에 대해 간단히 쓰는 식으로 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 같다. 이렇게 업데이트가 없어서야. '왼쪽에 작은 표지그림+오른쪽에 글'형태로 게시글을 올리기 곤란하니ㅡ태터툴즈의 파일추가를 이용해서 올리면 왼쪽에 나란히 붙어야 할 그림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 형태가 되어버린다.ㅡ 이것 참. 여하튼 계속 같은 게시물만 보니 영 개운찮아 책장 한쪽이나마 찍어 올려본다.

1. Bones of the Moon, Jonathan Carroll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책.

2.The Marrige of Sticks, Jonathan Carroll 조너선 캐롤의 2000년 작이다. 캐롤 특유의 환상적인 현실감과 도시적 감각은 여전하지만 ㅡ 제목도 멋있고ㅡ 불륜에 빠진 여자 주인공의 행동에서 설득력이 부족하고('이거 쓴 사람은 딱 보니 남자군.'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 주인공도 매력이 없어 그냥 한 번쯤 재미있게 읽고 넘길 책이다. 사랑을 하는 여자 입장에서 묘사한 남자주인공에게서 독자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작가의 문제다. 인물만 제대로 살았다면 담고 있는 메세지가 훨씬 살아났을 텐데.

3. The Prisoner, Thomas M. Disch 프리즈너 TV판의 소설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럭저럭 괜찮게 읽었다.(아마존 서평을 보니 드라마판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서 실망했다고 불평하는 서평이 많더라.) Camp Concentration이나 334같은 걸작 수준은 아니다.

4. Starlight 2, Patrick Nielson Hayden
5. Starlight 1, Patrick Nielson Hayden
3권까지 나온 오리지널 앤솔로지 시리즈다. 신인 작가의 작품이 많아 불안했으나 생각 이상으로 수준이 높아 3권은 하드커버로 구입했다.(덕분에 다른 책장에.) 로버트 찰스 윌슨의 인상적인 단편으로 시작하는 책이 1권인지 2권인지 모르겠네. 나온 당시라면 당연히 추천하겠지만 이제는 여기 실렸던 작품들이 이런 저런 리프린트 앤솔로지에 거듭 실렸기 때문에 관심 분야에 맞춰 리프린트 앤솔로지를 구입하는 편이 나을 듯.

6. Nostrilia, Cordwainer Smith
코드웨이너 스미스는 역시 장편보다 단편이다. 옛날 장편이 재간되었기에 샀는데, 너무 고전적(-_-)이라 끙끙대다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안 읽은 부분에 엄청난 반전이 있는 건 아니겠지?

7. Isle of the Dead/Eye of Cat, Roger Zelazny
ibook에서 내놓은 젤라즈니 전집 시리즈. 중편 둘을 묶었다.

8. The Last Defender of Camelot, Roger Zelazny
7과 같은 시리즈. 국내에 나온 단편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와 완전히 겹치는 책은 아니다. 소품 단편들이 뜻밖에 귀엽다. RashpXX님께서 이 전집을 모두 모으신다던데.....나는 아마 이 두 권 뿐인 듯?

9. Report to the Man's Club and other stories, Carol Emshwiller
페미니즘 작가라고 할 만할 듯. 단편집으로 10페이지 남짓한 짧은 글이 대부분이다. 첫 작품 Grandma야 두말할 것 없이 인상적인 작품이고, 표제작 Report to the Man's Club도 괜찮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팁트리 주니어나 조안나 러스의 강렬함이나 어슐러 르귄의 깊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장편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이야기꾼' 타입의 작가는 아니다.

10. A Bridge of Years, Robert Charles Wilson
로버트 찰스 윌슨의 시간여행물이다. 지하실에 시간여행 통로가 있는 집에 이사온 사람이 시간을 넘나들며 쫒고 쫓기는 사람들(?)의 문제에 휘말린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꽤 초기작으로, 미숙한 티가 많이 난다. 지금까지 읽은 윌슨의 작품 중에서 따지자면 중하 정도 수준.

11. The Dreams Our Stuff Is Made of, Thomas M. Disch
토머스 디쉬의 sf비평집. 굉장히 '영리한' 책이다. 딱히 시대별로 쓰이지는 않았으나 페미니즘, 사이버펑크 같은 주제와 그 주제가 나온 특정 시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SF의 시작을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 에드가 엘런 포로 보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너무 거침없어 동의하기 힘든 부분에서는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SF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읽고 나서야 디쉬의 잘난척을 비웃든 그 막나가는 비판에 동참하든 일단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고 디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소설만 보았을 때는 범접하기 힘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하.

.....그런데 대충 찍었더니 '이거 짱이에염.'이라고 외칠 만한 책이 없는 칸이었네. 긁적.

2004년 6월 15일 화요일

새로 들어온 책 : 6월 3일 ~ 6월 15일



타이거, 타이거 알프레드 베스터, 시공사 그리폰북스

열 번째 세계 김주영, 황금가지
- 저자에게는 아쉬움이 많은 책인 모양이지만 나는 팬의 본분에 충실하야 흠은 작게 보고 덕은 크게 보며 재미있게 읽었다.

경제기사랑 친해지기
- 독서실에서 쉬고 싶을 때 읽으려고 구입. 지금 절반 정도까지 왔는데, 처음 생각했던 목적에는 딱 맞다. 예가 재미있고 기본 개념을 쉽게 다루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책 제목대로 실생활 경제 상식을 얻는 데도 꽤 도움이 된다. 단, 본격적인 공부에 도움이 될 책은 아니다. 저자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너무 많이 틀려 몹시 거슬린다. (처음에는 이것 때문에 반품할 생각도 했으나 귀찮기도 하고 내용은 읽을 만 해서 그냥 수정액으로 고쳐가며 읽고 있다.) 한 두 가지면 오타려니 하겠는데, '섯불리', '돈을 붙이려면',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같은 부분은 아무리 봐도 처음부터 잘못 쓴 것이다. 출판사 사람들은 이런 것도 안 고치고 뭘 했나 몰라.

Breaking Windows: A Fantastic Metropolis Sampler
- 판타스틱 메트로폴리스 웹사이트에 실린 단편을 모은 책. 오늘 도착해서 아직 목차도 못 살펴봤다.

Interzone, #193
- 데이비드 프링글에게서 앤디 콕스에게로 넘어가는 중간에 정기구독 신청을 했더니 몇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경황 없는 중에 신청서가 분실되었나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책이 도착해서 엄청 놀랐다. 인터넷으로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해 보니 말도 없이 결제 넣었군. -_- 말을 하고 가져가란 말이다! 덕분에 아직 배송 준비중이던 스터젼 전집 두 권을 허겁지겁 취소해야 했다.

Postscript, Spring 2004 (PB, HC)
- PS Publishing 창간호. 일단은 합격선.

On Spec, Spring 2004
- 캐나다 SF/F 세미프로진. 지난 겨울호가 정말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캐나다 잡지라 궁금해서 받아보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이라 앞으로도 계속 읽을 것 같다.

Say...is this a cat?
- 이런 잡지를 만들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 직접 그린 그림을 삽화 삼고 좋아하는 작가(사람)들에게 청한 글을 모아 도화지같은 종이에 흑백으로 죽죽 뽑아냈다. 각 작가들의 단편집에도 실릴 것 같지 않은 소품이지만, 즐겁게 만든 책이라 읽는 사람도 즐겁다. 1월에 주문했으나 세관에서 문제가 생겨 아래 4호와 함께 이번 주에 겨우 도착했다. 무사히 받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편집자님께서 미안하다고 싸인까지 해서 보내주셨네그려. 오홋. (이런 데 잘 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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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why aren't we crying?
- say....4호. 2호와 3호는 절판이라 구하지 못해 위 1호에서 바로 4호로 넘어갔다. 컬러표지, 풀제본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