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28일 월요일

박제가, 궁핍한 날의 벗

박제가 산문집. 큰 뜻과 넓은 배움을 펼치지 못한, 그야말로 때를 잘못 만난 위항인의 고독과 설움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상소문을 올리고, 지저분한 싸움에 휘말리는 줄 알면서도 벼슬을 하고, 게다가 놀랍게도 쉰 다섯까지 살았다. (놀고먹는 사대부를 좀벌레에 비유한 직설적인 상소문을 읽었을 때는, '이런 말 하고도 살아남았다니' 싶었다.)

태학산문선 101. 실물을 보지 못하고 주문했는데, 책 말미에 원문을 실어 놓아서 좀 놀랬다. [기회가 닿거든 열심히 공부해서] 꼭 원문으로 읽어 보고 싶다.

2005년 2월 27일 일요일

김주영, 노래하는 늪

적어 김주영님의 단편을 모은 e-book. 거울에서 종이책으로도 출간할 예정이라 한다. 거울에 실렸던 단편 몇 편, 홈페이지에 올리셨던 단편 두엇, 그리고 처음 읽는 단편 두엇 하여 총 여덟 편이 실렸다. 예전에 읽은 기억이 없는 '붓끝 한 방울' 과 '마지막 티타임'도 좋았다. 거울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영원한 수요일' 역시, 몇 번을 거듭 읽어도 가슴을 울린다. 거울에 실린 '찬란한 눈동자들의 강림'과 '분실의 도시'가 빠진 것은 작가 본인의 의견에 따른 결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의외였다. 종이책에는 실렸으면 좋겠다.

http://www.booktopia.com/booktopia/main/fantasy_ebook_detail.asp?book_num=05021074&Branch=A30200

2005년 2월 26일 토요일

[잡기] 주문한 책 05/02/26

뜬세상의 아름다움 - 정약용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곶감과 수필 - 윤오영
시란 무엇인가 - 유종호
자유의 감옥 - 미하엘 엔데

박종채, 나의 아버지 박지원

연암의 차남이자 박규수의 아버지인 박종채가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모아 엮은 '과정록'의 한글 번역본이다. 어지러운 세파에서 몸은 피했지만, 기개는 꺾지 않았던 꼬장꼬장하고 가난한(...) 학자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당대에 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여러 번 어려움을 겪게 했던 연암의 글이 지금껏 잘 보존된 데에는 박종채의 공이 크다.) 18-19세기 가난한 학자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재주 있는 이가 스스로 몸을 삼가토록 만들었던 시대의 패악이 절절히 느껴진다.

다른 책에서 읽었던 지우들과의 에피소드, 전각과 관련된 일화 등이 특히 즐거웠고, 당파적으로 노론임을 분명히 했던 점과 관련하여 아들의 입장에서 전한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2005년 2월 20일 일요일

Catherine Asaro, The Charmed Sphere

Catherine Asaro가 할리퀸의 판타지 로맨스 레이블 LUNA에서 낸 장편. 엄청나게 낯간지럽다.;

2005년 2월 19일 토요일

[잡기] 새 책 (들어온 책/주문한 책)


도착
최유기 relaod 4 - 미네쿠라 카즈야
둠즈데이 북 - 코니 윌리스
The Charmed Sphere - Catherine Asaro


어느 바람 - 고은

주문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 신경림 엮음

궁핍한 날의 벗(태학산문선101) - 박제가
나의 아버지 박지원 - 박종채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김태완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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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Locus 11월, 12월호 도착

2005년 2월 9일 수요일

오광수 엮음, 시는 아름답다

기자이자 시인인 엮은이가 경향신문에 소개한 시를 모았다.

매우 시적인 배열 / 성미정
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略傳) / 권혁웅
바퀴-속도에 관한 명상 5 / 반칠환
희망에 부딪혀 죽다 / 길상호
멸치 / 이건청
공주 시장 / 윤재철
그 강에 가고 싶다 / 김용택
그리운 바다 성산포 -바다를 본다 / 이생진

2005년 2월 8일 화요일

러셀 로버츠, 보이지 않는 마음

시장자유주의 찬가를 100절까지 들은 기분이다.

주인공인 고등학교 경제교사 샘 고든은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이다. 시장을 찬양하고, 규제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그리고 나도 그의 견해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특히 '너 돈 많잖아. 그러니까 사회[=나]에게도 좀 줘.'식의 땡깡(...)이나 자본가에 대한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비난에 대한 비판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사회복지서비스를 경직된 정부가 아니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일견 타당한 바가 있다. 당장 나 자신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민간사회복지현장을 염두에 두고 이 길을 선택했고, 지금도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민간단체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이 샘 고든의 감동적인 연설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불편하고 무섭다. 공장의 안전장치 규제를 풀고 최저임금제를 없애면 정말 시장이 보이지 않는 마음...아니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 줄 지도 모른다. 국가가 세금으로 공공비용을 징수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그 돈으로 경직된 규제에 묶인 정부는 할 수 없는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훨씬 더 효율적인 단체를 만들어 자유롭게 활동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케인지안이니 클래시컬스쿨이니 하는 구분을 떠나서, 그 단계 앞에 있는 산을 넘을 수가 없다. 고든은 그것이 작은 언덕인 것처럼 말한다. 바우처 제도를 잘 활용하고, 시민사회의 역량을 믿고, 교육에 힘을 쏟으면 다음 세대에게는 더 많은 선택이 주어진단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규제가 없어지자 처음에는 안전장치 없는 공장을 운영하던 기업가들이 언젠가 그것이 더 큰 이윤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안전장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다친 사람들은 어디로 가지? 시장복지의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체를 쌓을 수 있을까? 비효율적인 규제의 부작용과 시장복지 달성을 위한 진통 중 어느 것이 더 큰 피해를 가져올까? 더 큰 피해를 판단할 수 있는 선은 어디쯤일까? 몇 명 쯤일까? 몇 세대일까? 비숙련 노동자를 노동시장에서 몰아내는 최저임금제와 실업수당제를 동시에 실시하는 사회보다,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균형임금에 모든 노동자를 고용하고 나머지 먹고 사는 일은 시민사회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가 정말로 더 바람직할까?

기업은 이윤을 추구할 뿐 사회악이 아니고(물론이다!), 시장은 모두에게 더 큰 만족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부분에는 크게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공공규제에 찬성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복지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포함한 더 큰 안전망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지만 그 값이 꼭 물질로만 치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값을 치루지 못할 고객을 밀어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공공정책이라는 큰 틀을 이용해서 모든 사람이 '도덕적 만족감'이라는 풍선을 하나씩 들고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꿈꾼다. 사람들이 이 풍선에 바람을 채우기 위해 물질적/정신적인 투자를 하고 싶어하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공기펌프를 찾을 수 있는 세상,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올바른 일'이라는 환상을 팔아먹는(...) 시스템 말이다. 그리고 그 과도기적 도구로서 제도와 규제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쓰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이미 늦었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해 일단은 중언부언 해 둔다. 책에 대해 잠깐 덧붙이자면

(1) 읽어볼 만 하다. 특히 자본가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한 현실을 고려할 때, 추천서라 해도 좋을 듯.
(2) 편집이 이상하다. 책 상단에 아무 쓸모 없는 여백을 몇 센티나 두었다.
(3) 번역 자체에는 무리가 없으나 고유명사 교정이 잘 안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조지'가 중간부터 '죠지'로 바뀌었다.
(4) 로맨스 부분은 좀 약하다.; 실망;;

2005년 2월 5일 토요일

콘노 오유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6 : 발렌티누스의 선물 (후편)

정진정명 공주님 사치코와 유미의 데이트 ('맥도널드에서는 햄버거를 먹을 때 나이프와 포크를 쓰지 않아요.'), 레이 양과 시마코 양의 데이트담에 더해 사치코의 카드를 찾았던 동급생의 뒷이야기도 짤막하게 실렸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역시 사토 세이라고, 새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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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윙크'가 마리미떼 만화판을 연재중이다!

2005년 2월 2일 수요일

김태권, 십자군 이야기

말이 필요없는 추천서! 어째서 지금껏 읽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좋은 책이었다. 혹여 십자군 이야기에 대해 이미 많이 알고 있거나, 별 관심이 없어서 구입을 망설이는 독자라면 즉시 구입하시길. 대단히 유익하고 재미있다. 어서 2권이 나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