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9일 목요일

Peter Milligan, Enigma

'마이클 스미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평범하고 시시한 남자가, 어렸을 때 읽었던 코믹스의 영웅 Enigma가 실제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런 저런 괴이한 모험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호모섹슈얼)을 찾는 얘기'라고 한다.

혹해서 샀다.

그런 얘기가 아니었다. -_- 아니, 정당히 말하자면 저런 줄거리라고 소개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핀트가 안 맞았다고나 할까.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성정체성과는 별로 상관 없는 그로테스크한 [굳이 말하자면] 환상스릴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저런 괴수, 다수의 도마뱀, 수많은 시체, 상당량의 핏물로 범벅되어 있다. 어두운 과거와 저주도 빠질 수 없지.

감탄하며 읽을 독자도 있을 테고, 어수선한 작화도 우중충하고 난삽한 내용에 잘 어울리지만, 내게 맞는 책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권하기도 곤란할 내용이다.

2005년 6월 7일 화요일

Warren Ellis, Transmetropolitans 4: The New Scum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주인공은 마초vs싸이코 형국인 대선이 진행되는 사이에, 욕설이 가득한 정치칼럼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크고 화려한 집이 가득한 부자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는 그런 글로 자신이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싫어하지만, 편안함에서 물러나기엔 속물이고, 스스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자신과 사회에 대한 혐오를 길에 선 차를 총으로 깨부수고 온갖 약을 몸에 부어 넣는 방식으로 표출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그들이 외면하는 슬럼가로 끌고 가고, 길가에 선 우는 아이에게 인형을 사 주고, 대선 후보에게 주먹을 날린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 결과가 대략 낭패.......이렇게 끝내면 다음 편을 안 볼 수가 없잖아! 이런, 이런.

내가 편히 읽기에는 언사가 너무 거칠어 거북한 감은 여전하지만, 역시 '그럼에도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 작가인 Warren Ellis보다 작화 담당인 Darick Robertson를 '발견했다'는 느낌이다.

실수로 빠뜨린 2권은 일단 주문했다.

2005년 6월 5일 일요일

Neil Gaiman, The Sandman 5 : A Game of You

2권에 잠깐 등장했던 Babarah가 주인공이다. 바바라는 2권에서 일어난 모종의 사건 뒤로 꿈을 꾸지 않게 되어 버렸다. 본래 꿈 속 세계의 공주인 바바라가 꿈에서 떨어져 나오는 바람에, 적과 싸우고 있던 바바라 공주 편 생물(?)들은 졸지에 자력갱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현실 - 혹은 이쪽 세계 - 의 바바라 앞에 저쪽 세계의 신하가 나타나면서, 현실은 급속히 꿈과 뒤섞인다.

샌드맨 시리즈는 뒤로 가도 힘이 빠지기는 커녕 점점 더 현란하고 복잡해진다. 읽는 재미/보는 재미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라, 마지막 권까지 읽고 나면 허탈해서 어떡하나 벌써 걱정이 된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능숙하게, 이렇게 잘 할 수 있는 걸까?

2005년 6월 4일 토요일

Neil Gaiman, The Sandman 4 : Season of Mists

이 책은 다른 권에서 잠깐 나왔던 샌드맨의 옛 애인 Nada의 얘기에서 출발한다. 샌드맨네 가족의 맏이 Destiny가, 늘 가지고 다니는 운명의 책에 나온 대로 가족 모임을 연다. Destiny, Death, Dream, Desire, Delirium, Despair에 대한 소개가 있다.(잠적한 형제 Destruction은 나오지 않는다.)

원탁에서, Desire는 Dream이 자신의 '내 왕국에서 여왕이 되자'는 청을 거절했던 Nada를 지옥에 천 년이나 감금했던 일을 들먹여 Dream의 화를 돋군다.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던 누나 Death마저 Dream의 행동이 잘못되었었다고 나무라자, Dream은 자신의 잘못을 늦게나마 시정하기 위해 Hell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Hell의 Lucifer와 1권에서 한판 한 터라 가서 잘못하면 끔찍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단단히 결심을 하고 찾아간 지옥은 텅 비어 있고, Lucifer는 전혀 뜻밖의 태도로 그를 맞는다.

점점 스케일이 커져서 나중에는 '이거 어떻게 수습하려나' 싶었는데, 역시나 게이먼,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감탄.

2005년 6월 3일 금요일

Neil Gaiman, Death : The Time of Your Life

샌드맨 시리즈의 번외 격인 Death의 이야기. 레즈비언 커플인 Hazel과 Foxglove의 이야기이다. (이 둘은 5권에서 주요 조연으로 다시 등장한다.) Foxglove가 유명한 가수가 되자, Hazel은 처음에는 그 성공에 기뻐했으나 이제는 애인과 예전처럼 살기를 남몰래 바라고 있다. Hazel이 아들과 조용히 지내는 동안, Foxglove는 해외 공연 중에 잠깐 만났던 여자로부터 레즈비언임을 언론에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절친한 사이인 매니저의 급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급히 돌아간 집에서, Hazel이 오래 전 Death와 거래(?)를 했음을 알게 되는데......

작은 에피소드에서 시작해서 점점 화려하게 펼쳐지는 꽉 짜인 이야기가 훌륭하고, 샌드맨 본편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편인 Death 누님의 멋진 모습도 많이 나온다.

Neil Gaiman, The Sandman 3 : Season of Mists

이 3권에는 독립된 이야기 네 편이 실렸는데, 1권에 실렸던 Death와 100년마다 만나는 친구 얘기가 이 책에 실렸어도 어울렸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게이먼의 샌드맨 시리즈는 정말로 훌륭하다. as님께서 구입하신 덕분에 빌려 읽고 있음에도 직접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