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30일 화요일

David Gerrold, Worlds of Wonder: How to Write Science Fiction and Fantasy

데이비드 제롤드의 소설작법 책. 철저히 판타지/SF에 초점을 두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꽤 전부터 틈날 때 조금씩 읽다가, 주말에 앓아 누운 김에 마저 보았다.

챕터 하나하나가 짧고 간명하여 읽는 맛이 있었다. 그 자신도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글을 쓰는 작가 답게, 스타일에 신경쓰지 말고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쓸 것을 헤밍웨이를 예로 들며 거듭 강조하고 있다.

기억해 둘 만한 것 몇 가지:

1. '외계인 창조하기' 챕터-외계인을 만들(?)때는 지구에 있는 생물을 따르라는 Cohen박사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물론 일종의 은유로서 전혀 새로운 외계인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SF에서 중요한 것은 '신빙성'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구에 없으면서 생물학적 및 화학적으로 타당하고 독자가 '믿을 수 있는' 외계인을 완전히 새로이 창조하려면 상당한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

2. 한 문단마다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문장이 최소한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도 신경써 둘 만 했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이야기에 쓸모가 없으면 과감하게 빼란다.

3. 보통 글을 쓸 때는 몇 가지 사건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인덱스 카드에 마음 속에 생각한 장면 하나 하나를 한 문장 정도로 간단한게 쓴다. 예를 들어 "커크 함장이 장군과 말다툼을 한다.", "스코티가 셔틀에서 사고를 당한다." 처럼 각 카드마다 생각나는 대로 죽 써 놓고, 탁자 위에 카드를 사건 순서대로 배열해 본다. 그런 다음 각 카드 사이가 매끄럽게 넘어가는지, 어떤 순서가 효과적인지 보고, 필요 없을 듯한 카드는 빼고, 가운데가 빈 듯 한 부분에는 새로운 사건을 추가한다. 컴퓨터로 생각나는 사건을 쓰는 개요 방식도 많이들 쓰지만, 제롤드는 물리적인 '시각'으로 글의 페이스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 작업을 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4. 글에는 2.5개의 스토리라인이 들어가야 한다. 2가지의 메인 사건과 그 밑을 흐르는 0.5 짜리 서브라인.

5. 글 안에 들어가서 써라. 자신이 생각한 특정 아이디어나 미래 기술 따위에 집착하면 글의 초점이 흐려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문은 나무로 된 두께 7cm정도의 판자로, 회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그는 금색 도료로 코팅이 된 금속 재질의 원형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려 잠금을 푼 다음 문을 안으로 밀었다.'고 쓰지 않고,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고 쓴다. 생각한 시대와 기술이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필요로 하는지 고민하고, 가능하면 '설명'을 하지 말고 '보여' 줘라.


그 외 이런 저런 기억해 둘 만한 부분이 적잖게 있었지만, 중반부터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챕터도 여럿 있었다. 특히 뭔가 실제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섹스신'과 '러브신' 챕터는 그냥 자기 소설만 잔뜩 인용해 놨더라. 무척 실망했지만, 이런 책에서 꼼수를 얻어 보려고 한 나도 좀......그러고 보니 예전에 '꼼수퇴치법'이라는 책을 사서 각종 꼼수를 열심히 외워 쓰다가 실력자에게 간파당하고 크게 반성한 적이 있었지.......


전체목차: http://www.amazon.com/gp/sitbv3/reader/ref=sib_dp_bod_toc/002-8154936-4685662?%5Fencoding=UTF8&pageID=S003&asin=1582970076

2006년 5월 27일 토요일

Patrick Nielsen Hayden, New Skies


SF를 처음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소개할 책을 고르기란 어렵다. 너무 옛날 책을 고르려니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요즘 나오는 좋은 책들이 눈에 걸리고,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작품을 권하려다 보면 '장르'에 대한 '입문자'의 기존 관념에 반하는 지나친 새로움이 오히려 장벽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두루 말해 SF지만 우주활극(Space Opera)과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 사이, 그렉 이건(Greg Egan)과 어슐러 K. 르귄(Ursula K. LeGuin)사이에는 적지않은 간극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이런 독자들에게 권할 만한 좋은 책이 원서이나마 몇 권 나와 있으니, 오리지널 앤솔로지 'Starlight'로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한 Patrick Nielsen Hayden이 2003년에 낸 리프린트 앤솔로지, 'New Skies'(Tor)도 그 중 한 권이다.

PNH의 'Starlight'는 안이한 리프린트 앤솔로지가 범람하던 SF/Fantasy 문단에 수준높은 신작과 신인을 소개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세 권 짜리 시리즈로,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Ted Chiang의 '지옥은 신의 부재'를 비롯, 수록작 대부분이 휴고 상이나 네뷸러 상 후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최근 '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Jonathan Strange & Mr. Norrell)'로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Susanna Clarke나 국내에는 아직 소개된 적이 없으나 좋은 작품으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Greg van Eekhout 의 데뷔 무대가 되기도 했던 책이다.

Starlight 시리즈로 단번에 장르 기획의 총아(?)로 부상한 PNH의 후속 작업이 바로 청소년을 겨냥한 New Skies / New Magics 단편선 기획이었다. New Skies는 '현대 과학소설 단편선(an anthology of today's Science Fiction)'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현대 과학소설의 전반적인 구성 내지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딘편 열 여덟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이 책은 대단히 '현대적'인데, 실린 단편들의 출판 시기가 80년대부터 21세기까지 다양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여러 시기의 출간작을 섞어 단편선을 만드는 경우, 편집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실린 작품 사이에서 시대의 격차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격변기였던 6,70년대 전후 작품이 함께 있는 경우 두드러지는데, PNH는 80년대 이후 작품을 고르고, 그 중에서도 '현대적인 감성'을 가진 단편을 잘 뽑아냈다. 명실상부 '오늘날의 SF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

Nancy Kress, Jane Yolen, Robert Charles Wilson, Phillip K. Dick 처럼 두 번 소개할 필요가 없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2/3 정도, 이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Maureen F. McHugh, Greg van Eekhout 등의 작품이 1/3 정도이고, 서브장르로 보아도 Geoffrey A. Landis의 하드SF, Terry Bisson의 풍자물, Steven Gould의 모험물 등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들이 용케 잘 어우러져 있다. 청소년 독자에게 SF를 소개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 보니 전반적인 어른도(?)가 높지 않아 대학살이나 강간장면을 보고 기겁할 우려도 없다.

기본적으로는 진입 독자에게 추천하기 좋은 책이지만, 지금껏 SF단편을 적잖게 읽은 독자라도 PNH의 명성을 믿고 집어들어 볼 만 하다. 나 역시 이 책에서 Steven Gould 같은 YA SF쪽 작가를 새로이 만났고, 너무 유명하다 보니 오히려 읽을 기회가 없었던 Connie Willis나 Spider Robinson의 80년대 단편을 마침내(?) 접하는 기쁨을 맛봤다. PNH는 작품이나 작가의 기존 명성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듯한 책을 내는] 편집자 중 하나라, 그의 단편선에는 신선하면서도 훌륭한 선택에 놀라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물론 내 Best SF no. 1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Nancy Kress의 'Out of all them bright stars' 이고, 도조와 걸작선에서 먼저 읽었던 RCW의 'The Last Goodbye'나 Greg van Eekhout의 'Will You Be an Astronaut?'도 좋았다. 아니, 곰곰 생각해 보니 이 단편선에선 정말 빼놓을 작품이 없구나. 국내에선 랜디스의 '태양 위를 걷다'와 비슨의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가 번역되어 온라인에 올라온 적이 있으니, 궁금한 분은 혹 아직 있나 한 번 찾아 보시길.

YA인 덕에 각 작품의 길이가 짧은 편이고(가장 긴 것도 스무 페이지 남짓에 불과하다.) HC의 경우 글씨가 크고 자간이 비교적 넓어, 원서에 익숙치 않은 독자에게 권하기에도 좋다. MMPB의 가격이 6.99달러이니 환율이 많이 낮아진 요즈음 같은 때 한 권 사 두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보게 될 책. 따로 소개하지 않은 New Magics는 이 책의 판타지 짝꿍이다.

New Skies / New Magics는 개인적으로 '직접 국내에 번역 출간하고 싶은 책' 목록의 상위에 두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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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PNH의 성은 Nielsen Hayden, 하이픈 없는 두 자리 성이다. Neilsen이 미들네임이 아니므로 알파벳 순으로 쓸 때는 N에 들어간다. 역시 SF 작가/편집자인 Teressa Neilsen Hayden과 결혼하면서 두 사람 성을 합쳐 새 성을 만들었다는데, 덕분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서점에서 자기들 책을 보면 H 가 아니라 N 자리에 꽂아 달라고 따로 공지를 올려뒀더라.

2006년 5월 14일 일요일

그레고리 매과이어 외, 앰 아이 블루?

동성애를 소재로 한 청소년 대상 단편집. 가볍고 밝으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어느 학교에나 한 권쯤 있어 마땅할 책이다. 역자가 후기에서 언급한 이중의 마이너리티는 나 역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다. 누가 했든 나왔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는 책이지만, 어쨌든 이 책의 역자가 부러웠다. 저자 중에 친숙한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으니......좋은 책을 찾아서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할 수 있게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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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2일 금요일

Mike Carlin, Star Trek TNG : Beginnings

1988년에 나온 Star Trek : The Next Generation 시리즈의 첫 번째 코믹스 여섯 편을 01년에 그래픽 노블 크기로 새로 묶어 낸 책. 정가를 주고 꽤 어렵게 구했는데, 시시해서 실망스러웠다. 재작년인가에 샀다가 너무 재미 없어서 대충 꽂아 뒀던 것을 기억난 김에 해치운다는 심정으로 마저 읽었다.

이 책을 보면 그후 십수 년 사이에 얼마나 스타트렉의 '감성'이 바뀌었는지가 한 눈에 보인다. 01년에 나온 David Brin이 스토리를 맡았던 만화 ' Forgiveness' 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확연해진다. 이 책의 특징은

1) 등장인물들의 사이가 나쁘다.
2) 남자는 모두 역삼각형이고 여자는 모두 가슴이 크다.
3) 함장님이 툭 하면 '명령이니 따르라!'고 소리를 지른다.

......크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