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30일 금요일

잽 테르 하르, 괜찮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축구를 좋아하는 열세 살 소년 베어는 공을 잡으러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고 만다. 갑자기 깜깜해진 세상에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님을 깨닫는 주인공의 이야기.

국내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넣었는데, 책과 잘 어울리는 멋진 그림이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단, 번역자가 높임말을 써서 번역한 점은 조금 미묘. 번역자 나름대로 국내 시장에서 설정한 대상 독자층이라든가 일러스트레이션과의 조화, 원문의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경어로 옮겼겠지만, 일단 읽으면서는 나라면 평어를 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느 쪽이든 장단이 있는 문제라......

얼마 전 10대 중후반(~성인)을 대상으로 한 단편집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번역할 때도 낮춤말과 높임말 사이에서 굉장히 고민했었다. 직관적으로 낮춤말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글도 있으나 어느 쪽이든 나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글도 있어, 애매한 소설은 일단 두 가지 방법으로 옮겨 본 다음에 더 원문과 유사하다 싶은 쪽을 골랐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번역'을 특집 기획으로 다룬 '창비어린이' 올해 봄호에 아동서 및 청소년도서에서의 관습적인 높임말 사용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꼭 한번 읽어보시압.)

경어든 평어든 간에 책은 추천할 만 하다. 베어가 축구팀 친구들과 자신 사이의 '다름'을 인식하는 장면과, 장애인을 둔 가족에 대한 주위의 '상처가 되는 무지'를 얘기한 9장이 특히 인상깊었다. '다름'이 '같음'으로 돌아설 수 없음을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결말도 아주 좋았다. 길지 않은 책이니 부담 없이 집어들어 보길 권한다.

덧) 책 뒷표지에 사소한 스포일러가 있다. 미리니름이 싫은 사람은 뒷표지를 보지 말 것!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우리들 (Mr. know 세계문학)

열린책들에서 Mr.Know 세계문학이라는 페이퍼백 시리즈로 '우리들' 을 재간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내용이 궁금했으나 책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지금껏 못 봤던 터라 재간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뻤다. 열린책들 책은 늘 예쁘지만, 특히 Mr.Know 시리즈는 이미 하드커버로 갖고 있는 책도 페이퍼백으로 바꾸고 싶어질 만큼 잘 만들어져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진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이 유리벽으로 나뉜 방에 사는 29세기를 그리는 디스토피아 미래소설이다. 1984와 멋진신세계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는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특히 마지막에서) 그 부분이 명확히 보여, 1984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독자로서 감회가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