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블로그를 방치한 사이에 읽었던 책들을 지금부터라도 기록하려고 했는데, 표지 넣기 귀찮다는 핑계로 또 미루고 있다. 그래서 일단은 표지 없이 제목만이라도.
한겨레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 칼럼을 썼다가 변호사가 되고 말았다고 하는; 금태섭 변호사의 책이다. '이럴 땐 이렇게 대처하세요'류의 실용서가 아니라, 법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법체계가 무엇이고 우리나라의 법이 어떤 이념과 원칙 하에서 운용되고 있는지를 실제 유명한 판례를 들어 잘 설명하고 있는 교양서이다. 전혀 법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추천할 만 한 좋은 책으로, 전공하는 입장에서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집어든 자리에서 끝까지 다 보게 되는 종류의 책. 대중에게 다가가는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거리를 준다.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2007년 7월 5일 목요일
카밀라 몰튼, 스타일리시한 여자는 하이힐을 신는다
이 책은 궁금해서 사 본 여성생활백과(?). 대충
5장 훌륭한 테이블 매너 갖추는 법
계절에 어울리는 테이블 꾸미기
나이프와 포크 사용하기
멋스럽게 와인 즐기기
전문가처럼 와인 시음하기
샴페인과 사랑에 빠지기
술 마신 이튿날 멀쩡해 보이기
이런 느낌이다. 기억 나는 조언으로는 '식사 중 하품을 참을 수 없을 때에는 포크를 떨어뜨리고 줍는 척 하면서 하품을 한다' 정도가 있다.;; 기대치가 상당히 낮았는데,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하드커버 제본이 아니었다면 좀 더 후한 평을 줬을 것 같다. 작은 커피테이블북 형식의 제본이 가장 어울릴 책이다.
2007년 4월 5일 목요일
하지현, 관계의 재구성
영화를 통해 친구, 부부, 연인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해 말한 책이다. 사실 이런 영화/소설/만화를 다룬 심리학 책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실제로 보지 않은 영화가 여럿 나왔는데도, 책장에서 뽑아 중간부터 대충 넘겨보다가 처음부터 제대로 끝까지 읽었을 정도다. 쓸데없이 무겁거나 너무 가볍지 않으면서도 글맛이 살아있는 좋은 책.
2006년 11월 10일 금요일
2006년 11월 9일 목요일
2006년 5월 30일 화요일
David Gerrold, Worlds of Wonder: How to Write Science Fiction and Fantasy
챕터 하나하나가 짧고 간명하여 읽는 맛이 있었다. 그 자신도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글을 쓰는 작가 답게, 스타일에 신경쓰지 말고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쓸 것을 헤밍웨이를 예로 들며 거듭 강조하고 있다.
기억해 둘 만한 것 몇 가지:
1. '외계인 창조하기' 챕터-외계인을 만들(?)때는 지구에 있는 생물을 따르라는 Cohen박사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물론 일종의 은유로서 전혀 새로운 외계인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SF에서 중요한 것은 '신빙성'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구에 없으면서 생물학적 및 화학적으로 타당하고 독자가 '믿을 수 있는' 외계인을 완전히 새로이 창조하려면 상당한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
2. 한 문단마다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문장이 최소한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도 신경써 둘 만 했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이야기에 쓸모가 없으면 과감하게 빼란다.
3. 보통 글을 쓸 때는 몇 가지 사건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인덱스 카드에 마음 속에 생각한 장면 하나 하나를 한 문장 정도로 간단한게 쓴다. 예를 들어 "커크 함장이 장군과 말다툼을 한다.", "스코티가 셔틀에서 사고를 당한다." 처럼 각 카드마다 생각나는 대로 죽 써 놓고, 탁자 위에 카드를 사건 순서대로 배열해 본다. 그런 다음 각 카드 사이가 매끄럽게 넘어가는지, 어떤 순서가 효과적인지 보고, 필요 없을 듯한 카드는 빼고, 가운데가 빈 듯 한 부분에는 새로운 사건을 추가한다. 컴퓨터로 생각나는 사건을 쓰는 개요 방식도 많이들 쓰지만, 제롤드는 물리적인 '시각'으로 글의 페이스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 작업을 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4. 글에는 2.5개의 스토리라인이 들어가야 한다. 2가지의 메인 사건과 그 밑을 흐르는 0.5 짜리 서브라인.
5. 글 안에 들어가서 써라. 자신이 생각한 특정 아이디어나 미래 기술 따위에 집착하면 글의 초점이 흐려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문은 나무로 된 두께 7cm정도의 판자로, 회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그는 금색 도료로 코팅이 된 금속 재질의 원형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려 잠금을 푼 다음 문을 안으로 밀었다.'고 쓰지 않고,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고 쓴다. 생각한 시대와 기술이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필요로 하는지 고민하고, 가능하면 '설명'을 하지 말고 '보여' 줘라.
그 외 이런 저런 기억해 둘 만한 부분이 적잖게 있었지만, 중반부터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챕터도 여럿 있었다. 특히 뭔가 실제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섹스신'과 '러브신' 챕터는 그냥 자기 소설만 잔뜩 인용해 놨더라. 무척 실망했지만, 이런 책에서 꼼수를 얻어 보려고 한 나도 좀......그러고 보니 예전에 '꼼수퇴치법'이라는 책을 사서 각종 꼼수를 열심히 외워 쓰다가 실력자에게 간파당하고 크게 반성한 적이 있었지.......
전체목차: http://www.amazon.com/gp/sitbv3/reader/ref=sib_dp_bod_toc/002-8154936-4685662?%5Fencoding=UTF8&pageID=S003&asin=1582970076
2005년 12월 10일 토요일
도종환,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 창작 교실
여러 작가의 작품을 두루 넣었으나, 실천문학사와 도종환 시인이 선호하는 '경향'이 보이기는 한다.
2005년 11월 21일 월요일
리처드 로드, 독일
2005년 4월 30일 토요일
2005년 4월 28일 목요일
김정호,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 - 시장경제로 풀어보는 토지문제
SERI연구에세이016
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바로 규제 때문'이라고 답한다. 국토가 좁아서도, 토지 투기꾼들이 설쳐서도 아니다. 오히려 이 두 가지는 전체 국토 중 단 5%(!)만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각종 규제에 따라 토지 과소 공급이 발생한 결과이다. 이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여 자꾸 규제하려고만 하면서 왜곡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간은 쓰기 귀찮아서 생략)
저자는 철저한 시장경제논리를 따라 규제 완화, 지방 분권, 토지재산권의 완전한 인정 등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 세부적인 정책 제언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토지도 재산권이고,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움직인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기억하자는 주장은 분명 되짚어 볼 가치가 있다. 100페이지 남짓한 문고본으로 분량이 적고 가격도 저렴하니 조금이라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추천.
2005년 4월 20일 수요일
김선욱, 정치와 진리(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9)
아렌트의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한 점은 [책을 살 때 기대한 바는 아니었으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사회 영역에 대한 설명에는 미진한 바가 눈에 띈다. 사적 영역의 사적 문제에서 공적 영역으로 전환된 대표적인 예로 경제를 들고 이에 따라 논의를 전개하는데, 아렌트에 대한 하버마스의 반박을 적은 지면에서 급하게 재반박하려다 보니 무리했다는 느낌이다. 특히 책 말미의 경제 어쩌고는 좀 생뚱하다.
이병화 외, 정치학으로의 산책
한울아카데미
2005년 2월 8일 화요일
러셀 로버츠, 보이지 않는 마음
주인공인 고등학교 경제교사 샘 고든은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이다. 시장을 찬양하고, 규제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그리고 나도 그의 견해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특히 '너 돈 많잖아. 그러니까 사회[=나]에게도 좀 줘.'식의 땡깡(...)이나 자본가에 대한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비난에 대한 비판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사회복지서비스를 경직된 정부가 아니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일견 타당한 바가 있다. 당장 나 자신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민간사회복지현장을 염두에 두고 이 길을 선택했고, 지금도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민간단체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이 샘 고든의 감동적인 연설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불편하고 무섭다. 공장의 안전장치 규제를 풀고 최저임금제를 없애면 정말 시장이 보이지 않는 마음...아니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 줄 지도 모른다. 국가가 세금으로 공공비용을 징수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그 돈으로 경직된 규제에 묶인 정부는 할 수 없는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훨씬 더 효율적인 단체를 만들어 자유롭게 활동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케인지안이니 클래시컬스쿨이니 하는 구분을 떠나서, 그 단계 앞에 있는 산을 넘을 수가 없다. 고든은 그것이 작은 언덕인 것처럼 말한다. 바우처 제도를 잘 활용하고, 시민사회의 역량을 믿고, 교육에 힘을 쏟으면 다음 세대에게는 더 많은 선택이 주어진단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규제가 없어지자 처음에는 안전장치 없는 공장을 운영하던 기업가들이 언젠가 그것이 더 큰 이윤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안전장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다친 사람들은 어디로 가지? 시장복지의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체를 쌓을 수 있을까? 비효율적인 규제의 부작용과 시장복지 달성을 위한 진통 중 어느 것이 더 큰 피해를 가져올까? 더 큰 피해를 판단할 수 있는 선은 어디쯤일까? 몇 명 쯤일까? 몇 세대일까? 비숙련 노동자를 노동시장에서 몰아내는 최저임금제와 실업수당제를 동시에 실시하는 사회보다,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균형임금에 모든 노동자를 고용하고 나머지 먹고 사는 일은 시민사회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가 정말로 더 바람직할까?
기업은 이윤을 추구할 뿐 사회악이 아니고(물론이다!), 시장은 모두에게 더 큰 만족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부분에는 크게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공공규제에 찬성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복지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포함한 더 큰 안전망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지만 그 값이 꼭 물질로만 치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값을 치루지 못할 고객을 밀어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공공정책이라는 큰 틀을 이용해서 모든 사람이 '도덕적 만족감'이라는 풍선을 하나씩 들고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꿈꾼다. 사람들이 이 풍선에 바람을 채우기 위해 물질적/정신적인 투자를 하고 싶어하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공기펌프를 찾을 수 있는 세상,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올바른 일'이라는 환상을 팔아먹는(...) 시스템 말이다. 그리고 그 과도기적 도구로서 제도와 규제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쓰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이미 늦었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해 일단은 중언부언 해 둔다. 책에 대해 잠깐 덧붙이자면
(1) 읽어볼 만 하다. 특히 자본가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한 현실을 고려할 때, 추천서라 해도 좋을 듯.
(2) 편집이 이상하다. 책 상단에 아무 쓸모 없는 여백을 몇 센티나 두었다.
(3) 번역 자체에는 무리가 없으나 고유명사 교정이 잘 안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조지'가 중간부터 '죠지'로 바뀌었다.
(4) 로맨스 부분은 좀 약하다.; 실망;;
2005년 2월 2일 수요일
김태권, 십자군 이야기
2004년 11월 24일 수요일
Irving Chernev, Logical Chess: Move By Move
ISBN: 0713484640
명기보 오십여 편을 킹사이드 어택(the kingside's attack)과 퀸즈폰 오프닝(the queen's pawn opening)으로 나누어 실었다. 각 대국의 한 수 한 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다루며 앞 뒤 정황에 따른 논리적인 움직임을 설명하여, 판 전체의 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흥미진진한 해설을 읽으며 따라 두다 보면 체스가 임기응변식으로 도망다니는 게임이 아니라 한 수도 허투루 낭비해서는 안 되는 넓은 전장의 전투로 보이기 시작한다. '폰 5개 = 나이트 1개' 식으로 설명하는 단순한 체스 교재에 답답함을 느꼈다면 특히 꼭 챙겨 봐야 하는 책. 요령이 아니라 기본을 가르친다.
대국이 익숙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는 있지만, 중요한 포석을 반복해서 지적해 주기 때문에 말의 움직임만 숙지하고 있다면 기초를 탄탄히 하기 위해 읽어도 좋겠다. 눈으로만 훑어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책이니 말과 판을 준비한 다음에 구입할 것! 체스마스터들이 자신의 명국을 직접 해설한 세 번째 파트는 앞 두 부분보다 조금 어렵다는 점도 참고 삼아 적어 둔다.
2004년 10월 12일 화요일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ISBN 8970134042
흄의 종교관을 이신론적 유신론으로 보는 시각에도 일견 설득력은 있으나, 나는 흄이 노골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나서지 않았던 것은 18세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흄을 불가지론자로 보아도, 그의 철학이 가지는 일관성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흄의 저작에서 신앙심을 찾아내어 그를 옹호하려는 글에서는 흔히 '불가지론자=극단적 회의론자 =/= 조화/자연주의자 = 흄'이라는 논리적 비약이 보인다. [무신론자도 아니고] 불가지론자를 극단적 회의론자라고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지나치게 종교적인 시각. 어쨌든 요령있게 산 덕분에 교수는 못 했어도 목숨과 명성은 건져(농담이 아니다), 신나게 읽을 글을 많이 남겼으니 다행일 따름이다.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의 철학/사상서는 (대체로) 굉장히 즐겁다. 새로운 지식이 환영받고, 새로운 의견이 고개를 들던 사회 분위기가 생생히 느껴져서 절로 가슴이 뛴다. 자연과학의 발달이 그에 실어낸 힘도 굉장하고. 새 시대가 덜컹덜컹 다가오는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달까나. 꼭 한번 가 보고 싶다.(갈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 마.;) 물론 그런 여유의 뒤에는 희생이 있었지만, 그건 다른 곳에서 달리 이야기할 부분이고.......
이태하씨의 해제는 '유학 중에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종교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역자 소개를 보고 우려했던 것에 비해 지극히 무난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연기적과 월드컵 4강 진출을 연결지어 말한 건 너무했어. --;
덧: 아참, 어쨌든 흄의 결론은 기적은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번역 이태하, 책세상, 2003
2004년 9월 16일 목요일
리처드 파인만 & 랄프 레이튼, 남이야 뭐라 하건!
ISBN : 8983711523
파인만은 인기가 있다. 훌륭한 물리학자일 뿐 아니라 유명하다. 꽤 잘 생긴 얼굴, 폭탄머리 아인슈타인 만큼이나 강렬한 대중 이미지, 백프로 미국 출신 이론물리학자라는 호감 요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준 덕분에, 파인만은 그가 원했든 그렇지 않든 '팔리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잡탕 책도 번역 출간이 되는 거다.
이 책의 전반 삼분의 일은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과 상당히 겹치는 자잘한 수재 에피소드와, 지금까지 소개된 적은 없지만 유명인의 사생활에 각별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길 그의 첫 결혼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 뒤를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다네요'류의 에피소드와 파이만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로 사료적 가치가 없어 보이는 개인적인 편지 몇 편이 따른다. 그 나머지는 뜬금없게도 챌린저호 폭파 사고에 대한 파인만과 조사단의 문제점 분석 과정과 파인만이 작성한 결과 보고서이다. 그에 더해 과학의 가치에 대한 연설문도 실렸다.
파인만의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만 하다. 또 들어도 재밌는 얘기라는게 있기 마련이고, 1930-60년대 물리학 인물사는 주인공이 누구든 그 자체로 피가 끓는 열혈물이니까. 챌린저호 폭파 사고의 원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도 이 사고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꽤 흥미로웠다. (요약: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하지만, '남이야 뭐라 하건'이 파인만의 사생활과 챌린저호 사건이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두 가지 소재를 한꺼번에 우겨넣은, 초점도 없고 독자도 애매하고 심지어 장르까지-위인전이냐, 자서전이냐, 과학교양서이냐- 불분명한 책이라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파인만의 사생활이 궁금하면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를, 파인만에게서 물리학 강의를 듣고 싶으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나 'Q.E.D. 강의'를 집어드는 쪽을 권한다.
덧: '생각되어진다'같은 표현은 번역자가 틀려도 편집 데스크에서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2004년 5월 13일 목요일
Barbara Bell, Minimus Pupil's Book : Starting Out in Latin
ISBN: 0521659604, ISBN: 0521755468 |
미니무스는 브리타니아에 살아요. 작은(mini) 쥐(mus)라서 미니무스죠. 어째서 라틴어를 쓰는데 영국에 사냐고요? 이천 년 전 영국은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는 섬이었거든요. 히드리아누스 황제님은 섬 한가운데에 하드리아누스 성벽(Hadrian's Wall)을 짓고, 로마 병사들을 보내 성벽을 지키게 했어요. 성벽 북쪽에는 우리 황제님이 쫒아낸 야만인들이 살아요. 우리집도 그래서 여기까지 왔죠.
우리집에는 집주인인 아저씨, 아줌마, 누나, 그리고 말썽꾸러기 막내 루푸스가 살아요. 물론 노예아저씨들도 있지요. 저랑 고양이 비브리사는 사실 얹혀 사는 거에요. 그래도 저는 작으니까 여기저기 갈 수 있어서 꽤 쓸모가 있어요. 만약 제가 작은 쥐가 아니라면 여러분이 우리집같은 로마인 가정을 속속들이 구경할 수도 없었을 걸요. 게다가 전 똑똑해서 현대 영어까지 할 줄 한다고요. 루푸스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궁금하세요? 우리집 사람들이랑 얘기해보고 싶어요? 제 설명만 잘 들으면 다 할 수 있어요.
에에, 키케로니 카이사르니 하는 어마어마한 아저씨들 글이 읽고 싶은데 언제 저랑 노냐고요? 그게 아니죠! 여러분 시대에야 라틴어는 그냥 책에 쓰인 죽은 언어겠지만, 제게 라틴어는 생활어에요. 그걸 잊어버리면 키케로도 카이사르도 재미가 없어요. 물론 저와 공부한다고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지는 않아요. 커다란 문법표나 두툼한 사전으로 공부해야겠죠.
하지만 문법책이 어려워서 라틴어가 싫어지려고 할 때, 아직 라틴어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만 어떤 말인지 한 번 들여다 보고 싶을 때, 라틴어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슬쩍 확인해 보고 싶을 때, 귀여운 쥐를 만나 실감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땐 저를 찾아오세요. 우리집에 놀러왔던 제이라는 무지무지 멋진 누나가 그랬어요. 누나는 옥스포드라는 데서 나온 라틴어 책을 여섯 달이나 공부했는데도, 저와 같이 클라우디아네 생일파티에 갈 때까지 라틴어로 '생일 축하해!'라는 말을 할 줄 몰랐다고요. 그런 거, 심심하잖아요.
좀 더 어려운 내용을 함께 공부하고 싶은 분을 위해 Minimus Teacher's Resourse Book도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엄청 비싸요. ($70) 제가 워낙 인기있다 보니, 얼마 전엔 'Minimus Secundus Pupil's Book : Moving on in Latin'라는 2권도 나왔어요. 제이누나는 아직 2권에는 놀러 못 와서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른대요. 다음에 제이누나랑 만나고 나서 또 여러분이랑 인사할게요. 안녕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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