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앤 피터스의 레즈비언 성장소설. [Luna]를 하도 몰입해 읽어, 그 책을 덮자마자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무료할 때 읽으려고 두 권을 함께 주문했었는데 하룻저녁거리도 안 되는구나.
주인공 홀란드는 학생회장인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으로, 스탠포드대에 입학허가를 받은 남자친구 세스와 사귀고 있다. 고등학생 때 홀란드를 임신하고 집에서 쫓겨난 후 힘들게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었던 어머니는 홀란드의 대입부터 생활까지 모두 간섭하려고 한다. 홀란드가 스스로 결정한 것 중 어머니가 만족한 일은, 허우대 좋고 똑똑하고 홀란드와 함께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친구 세스 뿐이다.(약국에서 착각하는 바람에 홀란드의 피임약을 어머니가 받아 주는 일이 생기는데, 참견쟁이인 어머니가 그에 대해서 별 말을 않을 정도다.) 어머니의 새 남편인 넬은 '어머니가 처음으로 만난 좋은 남자'이지만, 거기에는 한 방을 써야 하는 페이스라는 고딕매니아 의붓여동생이 딸려 있다.
홀란드의 학교에 센트럴 워싱턴에서 세시라는 여학생이 전학을 온다. 이 아이는 처음부터 무지개와 'IMRU'라는 문구가 쓰인 셔츠를 당당히 입고 나타나, 왜 이 학교에는 LGBTQ 동아리가 없냐며 홀란드에게 동아리 신설 신청에 관해 묻는다. 그저 무던한 성격이던 홀란드는 세시의 신청서를 받아 학교회의에 가져가는데, 그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다른 사람들의 혐오/거부감/차별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처음부터 눈을 뗄 수 없었던 세시를 진짜 사랑하게 된다. 세스와의 관계가 그저 오랜 우정에 불과했고, 자신에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체성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Luna]와 [Keeping You a Secret] 두 권에서는 신경질적인(hysterical) 감성이 공통적으로 묻어난다. 그리고 그 신경질적인 반응은 현실에서의 작은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여 굳어졌을 때만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사물함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거나, 건달 남자애들이 레즈비언 여자애에게 떼로 몰려들어 위협하는 것과 같은 노골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농담("저 사람 말투 진짜 여자같다. 호모냐?"), 당연하다는 듯이 표현되는 사회적인 고정관념 ("그 나이에 애인이 없다니!"), 아는 사람의 변화("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가 모이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제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다면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을' 책이지만 직접 번역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내일은 만화책을 몇 권 사러 가기로 했다.
2007년 4월 5일 목요일
Julie Anne Peters, Keeping You a Secret
Julie Anne Peters, Luna
레이건에게는 오빠가 한 명 있다. 아니, 언니다. 레이건의 오빠 리암은 트렌스젠더로, 밤이면 레이건의 방에 와서 레이건의 옷을 입어보고 화장을 하며 몇 시간씩 보낸다. 자기를 루나라고 불라달라고 하며. 레이건은 정신과 맞지 않는 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오빠의 비밀을 함께 안고 살아왔다. (실직한 다음부터 작은 회사에 다니는) 아빠는 자꾸 자신이 원하는 성격이 아닌 아들에게 운동을 하라, 연애를 하라며 밀어붙인다. 예전에는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웨딩플래너 일에 바빠 레이건이나 리암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레이건과 리암과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앨리슨은 리암을 좋아하고, 그가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있지만, 설마 리암이 자기를 소녀라고 생각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낮에는 리암을 연기하고 밤이면 루나로 돌아오던 오빠는 결국 한계점에 도달하고,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현실은 결국 무너져내린다.
아주 섬세하고 현실적이고, 그래서 괴롭지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John Hall, Is he, isn't he
단짝친구인 페이지와 앤소니는 둘 다 별로 애인 운이 없다. 페이지는 어째선지 데이트를 별로 하지 않고, 앤소니는 처음 진지하게 사귀었던 애인인 이안이 바람을 피워서 뻥 차버린 직후라 우울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마음에 쏙 드는 미남 전학생 맥스가 등장! 페이지와 앤소니는 먼저 맥스의 마음을 사로잡는 쪽에게 단짝으로서 깨끗하게 양보하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is he, isn't he'의 문제가 남아 있다. 앤소니는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게이이고 너를 좋아하는데, 나와 사귀겠느냐?"고 물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여자인 페이지가 그 질문을 하는 건 너무 생뚱맞다. 앤소니의 게이더(gayder)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고, 페이지와 앤소니는 맥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좌충우돌하는데.....
흥미로운 설정과 귀여운 표지에 이끌려 구입했다. (태터 업글 후, 어째선지 이 게시판에는 그림이 안 올려진다.) 그런데 앞 10페이지를 읽자마자 내 취향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1. 주인공들은 엄청 비싼 뉴욕의 사립 고등학교에 다닌다.
2. 페이지의 어머니는 엄청 유명한 드라마의 주연 탤런트이다.
3. 앤소니의 부모님은 엄청 유명한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이다.
4. 맥스의 아버지는 엄청 유명한 이탈리안 쉐프이다.
5. 주인공들의 친구 쌍둥이는 엄청 부잣집 딸들로, 전속 스타일러스를 두고 매일 차려입고 다닌다.
6. 앤소니는 엄청 명문대에 다니는 형과 팬트하우스에서 살고, 자신의 성정체성에 전혀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돈 많고 잘생겼고 가족과 친구들이 게이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등등.)
7. 이 소설의 고등학생들은 쇼핑과 수다와 연애와 파티밖에 안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가방 하나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프라다 숄더백을 탁자에 휙 내던진"다.
8. 여자는 모두 예쁘고 남자는 모두 역삼각형 몸매에 잘생겼다. (진담이다.)
그냥 꿈꾸는 연애소설으로 읽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배경이 현대 미국인데, 24세기 화성인 책보다 비현실적이었다. 컨템포러리 픽션이 아니라 판타지 같았다.
2006년 7월 9일 일요일
Kathe Koja, Talk
[Talk]의 주인공 키트 웹스터(Kit Webster)는 학교 연극에서 주연을 맡으며 처음으로 연기을 하게 되고, 초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멋진 연기로 (특히) 공동 주연인 학교의 여왕님 린지 월쉬(Lindsay Walsh)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연극은 처음' 이라는 키트는 사실 평생 연극을 해 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 '평범한 이성애자 사립고등학생 키트 웹스터'로.
그리고 오학년 때, 카버 선생님의 수업을 같이 듣던 여자아이 두 명이 나더러 게이라고 했다. 카버 선생님은 그 아이들에게 굉장히 화를 내며 게이는 나쁜 말, 끔찍한 말이라고 했다. 그 때, 마치 번개를 맞은 듯한 깨달음이 찾아왔고,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 사람들이 바로 나 같은 사람더러 게이라고 하는 거야? 다른 남자아이들을 보고 나처럼 느끼는 사람을? 그게 바로 그런 뜻이었어?
나쁘고 끔찍한 말.
키트가 사실은 작년에 학교 축제에서 왕 자리에 뽑혔던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파블로(Pablo)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 카르멘 뿐이다. 커밍아웃이 어려운 것은 가족이 받아들이지 않을까봐가 아니다. 물론 그 걱정도 있지만, 키트는 이미 열여덟 살이나 되었고, 무료변론을 하는 변호사 아버지나, 진보적인 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키트의 사립고등학교 입학을 반대했던 어머니가 정말로 자신을 내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눈치채고, 자신이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 않나 의심한다.) 그보다 근본적인 두려움은 '다름' 자체에 대한 것이다.
카르마는 그게 쉽다고 생각한다. 그냥 해. 커밍아웃 하면 되잖아. 하지만 카르마는, 심지어 카르마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카르마가 내게 보여줬던 '열 명 중에 한 명' 실험에서 보듯이. 메릴랜드의 무슨 학교인지 GSA - 게이-스트레이트 연합모임 - 어딘지에서, 밤새 모든 열 번째 물건에 '십 퍼센트' 라는 작은 스티커를 붙였단다. 사물함, 책상, 화장실 칸, 카페테리아의 식판 등 손이 닿는 물건에는 모조리 다, 열 명 중에 한 명은 게이라는 뜻으로 그랬다지? 카르마는 이 일에 대해 읽더니 흥분해서 이봐, 우리도 하자! 라고 나섰다. 카르마는 우리가 많은 일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건 그녀의 일이 아니잖아? 내 일이지.
연극 연습이 열기를 띨 수록, 린지는 다른 남학생들과 달리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키트에게 매력을 느끼고 ('I'm interested in his uninterest in me.'), 카르멘은 파블로가 속한 밴드 공연에 가면서도 그에게 인사 한 번 못 건네는 키트더러 '평생 머리맡에 붙인 포스터만 볼 거냐'고 다그친다. 설상가상으로, 테러리스트(린지)와 그를 심문하는 고문관(키트)의 대화를 다룬 [Talk]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학부모회의 항의로 연극 공연 자체가 미궁에 빠지고 만다. 연극 포스터에 쓰인 '키트 ♡ 나'라는 낙서도,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키트에게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캐스 코자는 키트와 린지라는 극단적이랄만치 다른 두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연극에 몰두하는 동안 현실의 문제를 잊어 보려고 하는 키트와, 재능 있으며 그만큼 자존심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린지라는 상반된 화자의 서술을 통해, 키트가 가진 고민은 현실성을 더해간다. 성격은 재수 없지만 연기력 하나만은 줄충한 린지는, 키트의 상대역이자, 키트가 상대해야 하는 세상의 현실적인 모습이다. 챕터 사이사이에 들어간 연극 [Talk]의 대본은 피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가는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키트는 연극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잊어버리지도 다른 사람이 되지도 못한다. 현실은 연극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나 존재하고, 어떤 고민들은 외면한다고 해서 작아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 되는 대신 자기 자신이 될 기회를 얻고, 독자는 그 기회를 통해 긴 인생의 '다음'을 보며, 조금은 안도하고 조금은 안타까워하게 된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들 한다. 하지만 개인이 백 번 이백 번 마음가짐을 새로이 한들,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행복과 평안도 있다. 책은 과연 그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앰 아이 블루?]가 고전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결국 그런 기대도 한낱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2006년 5월 14일 일요일
그레고리 매과이어 외, 앰 아이 블루?
전체목록
브루스 코빌 - 앰 아이 블루?
M. E. 커 - 어쩌면 우리는
프란체스카 리아 블록 - 위니와 토미
재클린 우드슨 - 조금씩 멀어지는
그레고리 매과이어 - 세상의 모든 양치기들
엘렌 하워드 - 달리기
제임스 크로스 기블린 - 7월의 세 월요일
낸시 가든 - 학부모의 밤
C. S. 애들러 - 마이클의 여동생
로이스 소리 - 홀딩
조나단 런던 - 손
윌리엄 슬리터 - 땅굴 속에서
메리언 데인 바우어 - 거꾸로 추는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