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7일 토요일

Patrick Nielsen Hayden, New Skies


SF를 처음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소개할 책을 고르기란 어렵다. 너무 옛날 책을 고르려니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요즘 나오는 좋은 책들이 눈에 걸리고,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작품을 권하려다 보면 '장르'에 대한 '입문자'의 기존 관념에 반하는 지나친 새로움이 오히려 장벽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두루 말해 SF지만 우주활극(Space Opera)과 대체역사(Alternative History) 사이, 그렉 이건(Greg Egan)과 어슐러 K. 르귄(Ursula K. LeGuin)사이에는 적지않은 간극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이런 독자들에게 권할 만한 좋은 책이 원서이나마 몇 권 나와 있으니, 오리지널 앤솔로지 'Starlight'로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한 Patrick Nielsen Hayden이 2003년에 낸 리프린트 앤솔로지, 'New Skies'(Tor)도 그 중 한 권이다.

PNH의 'Starlight'는 안이한 리프린트 앤솔로지가 범람하던 SF/Fantasy 문단에 수준높은 신작과 신인을 소개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세 권 짜리 시리즈로,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Ted Chiang의 '지옥은 신의 부재'를 비롯, 수록작 대부분이 휴고 상이나 네뷸러 상 후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최근 '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Jonathan Strange & Mr. Norrell)'로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Susanna Clarke나 국내에는 아직 소개된 적이 없으나 좋은 작품으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Greg van Eekhout 의 데뷔 무대가 되기도 했던 책이다.

Starlight 시리즈로 단번에 장르 기획의 총아(?)로 부상한 PNH의 후속 작업이 바로 청소년을 겨냥한 New Skies / New Magics 단편선 기획이었다. New Skies는 '현대 과학소설 단편선(an anthology of today's Science Fiction)'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현대 과학소설의 전반적인 구성 내지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딘편 열 여덟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이 책은 대단히 '현대적'인데, 실린 단편들의 출판 시기가 80년대부터 21세기까지 다양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여러 시기의 출간작을 섞어 단편선을 만드는 경우, 편집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실린 작품 사이에서 시대의 격차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격변기였던 6,70년대 전후 작품이 함께 있는 경우 두드러지는데, PNH는 80년대 이후 작품을 고르고, 그 중에서도 '현대적인 감성'을 가진 단편을 잘 뽑아냈다. 명실상부 '오늘날의 SF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느낌.

Nancy Kress, Jane Yolen, Robert Charles Wilson, Phillip K. Dick 처럼 두 번 소개할 필요가 없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2/3 정도, 이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Maureen F. McHugh, Greg van Eekhout 등의 작품이 1/3 정도이고, 서브장르로 보아도 Geoffrey A. Landis의 하드SF, Terry Bisson의 풍자물, Steven Gould의 모험물 등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들이 용케 잘 어우러져 있다. 청소년 독자에게 SF를 소개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 보니 전반적인 어른도(?)가 높지 않아 대학살이나 강간장면을 보고 기겁할 우려도 없다.

기본적으로는 진입 독자에게 추천하기 좋은 책이지만, 지금껏 SF단편을 적잖게 읽은 독자라도 PNH의 명성을 믿고 집어들어 볼 만 하다. 나 역시 이 책에서 Steven Gould 같은 YA SF쪽 작가를 새로이 만났고, 너무 유명하다 보니 오히려 읽을 기회가 없었던 Connie Willis나 Spider Robinson의 80년대 단편을 마침내(?) 접하는 기쁨을 맛봤다. PNH는 작품이나 작가의 기존 명성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듯한 책을 내는] 편집자 중 하나라, 그의 단편선에는 신선하면서도 훌륭한 선택에 놀라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물론 내 Best SF no. 1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Nancy Kress의 'Out of all them bright stars' 이고, 도조와 걸작선에서 먼저 읽었던 RCW의 'The Last Goodbye'나 Greg van Eekhout의 'Will You Be an Astronaut?'도 좋았다. 아니, 곰곰 생각해 보니 이 단편선에선 정말 빼놓을 작품이 없구나. 국내에선 랜디스의 '태양 위를 걷다'와 비슨의 '걔들 몸은 고깃덩어리래'가 번역되어 온라인에 올라온 적이 있으니, 궁금한 분은 혹 아직 있나 한 번 찾아 보시길.

YA인 덕에 각 작품의 길이가 짧은 편이고(가장 긴 것도 스무 페이지 남짓에 불과하다.) HC의 경우 글씨가 크고 자간이 비교적 넓어, 원서에 익숙치 않은 독자에게 권하기에도 좋다. MMPB의 가격이 6.99달러이니 환율이 많이 낮아진 요즈음 같은 때 한 권 사 두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보게 될 책. 따로 소개하지 않은 New Magics는 이 책의 판타지 짝꿍이다.

New Skies / New Magics는 개인적으로 '직접 국내에 번역 출간하고 싶은 책' 목록의 상위에 두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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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PNH의 성은 Nielsen Hayden, 하이픈 없는 두 자리 성이다. Neilsen이 미들네임이 아니므로 알파벳 순으로 쓸 때는 N에 들어간다. 역시 SF 작가/편집자인 Teressa Neilsen Hayden과 결혼하면서 두 사람 성을 합쳐 새 성을 만들었다는데, 덕분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서점에서 자기들 책을 보면 H 가 아니라 N 자리에 꽂아 달라고 따로 공지를 올려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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