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4일 토요일

곽재구 편,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서정적인 단시 중심으로 편집된 시집. 이 시집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단연 황인숙의 '강'을 읽은 것이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통채로 외웠다. 황인숙 시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찾아 보니 수필집도 있구나.

유홍준의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 도종환의 '책꽃이를 치우며' 같은 시도 기억해 둘 만 했다. 곽재구 시인의 단평 자체는 조금 '달달' 한 느낌이었지만, 실린 시들은 참 좋았다.

2005년 12월 23일 금요일

정남식 외, 소리 소문 없이 그것은 왔다 (문학과지성사가 주목하는 젊은 시인들)

문학과지성사의 문예계간지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의 시를 네 편씩 실었다. 전체 저자 목록을 실린 순서대로 쓰면 : 정남식, 박인택, 차창룡, 이윤학, 함성호, 박형준, 김태동, 강정, 이원, 김소연, 연왕모, 윤의섭, 성기완, 임후성, 서정학, 이철성, 김점용, 이찬, 배신호, 우종녀, 이기성, 김중, 진은영.

현대시는 어렵다는 편견을 확대재생산하기에 딱 좋은 시집이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이찬의 '할머니'연작, 그 중에서도 '할머니의 젖무덤'이었고, 박인택('아파트'), 윤의섭('물의 默示'), 김소연('온도'), 서정학('세일러 문'), 이철성('소리 소문 없이 그것은 왔다'), 배신호 시인의 작품도 좋았다. 확실히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시인은 정남식, 우종녀, 성기완, 김점용, 강정 정도.

초독시엔 읽으면서 괴로울 만큼 어려웠지만, 처음 볼 때와 두 번 볼 때의 느낌이 달랐고, 베껴 써 보니 더욱 달랐다.

그녀를 태우고 나는 고기리 저수지로 달려갔다
저녁 햇살 수놓인 물비늘마다
해 뜨고 저물어간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윤의섭, '물의 묵시')

이웃 찾아가듯 바다 앞에 나서면
사람들 사이에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좀벌레 같은 마음은
더욱 작은 피라미 되어 풀쩍 바다로 뿔뿔이 헤엄쳐간다

(정남식, '바다')

이런, '나보고 쓰라면 절대 못 쓸', 기억해 둘 만한 구절이 제법 있었다. 감탄하며 여러 번 읽었다.

2005년 12월 15일 목요일

오세영 편저, 생이 빛나는 아침: 아름다운 우리시 99편

시인 한 명당 한 편씩 골라, 단평을 곁들여 모은 시집. 신문 연재분도 섞여 있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시는 '12월'(홍윤숙), '너무 많은 것 가운데 하나'(오탁번), '낮잠'(임보) 정도. 좋은 글이 많았으나, 오세영 시인의 단평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나와 생각이 너무 달라서 생뚱맞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작품이 발표된 시기나 쓰여진 시기를 따로 쓰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시인의 생몰년도를 넣느니 작품 발표 시기를 넣었으면 더 나았겠다. (특히 단평 중 시인의 나이를 언급한 것들이 있어서 좀 답답했다.)

콘노 오유키,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12: 어린양들의 휴가

여름 방학. 유미는 언니와 둘이서만 오가사와라 가의 별장에 휴가를 간다. 그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 모두가 동경하던 사치코 님의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된' 유미를 질투하는 부잣집 아가씨들을 만나는데......

2005년 12월 11일 일요일

[잡기] 새 책


무게 - 재닛 윈터슨 (송경아 역. 고맙습니다. (__))
플라워 오브 라이프 2 - 요시나가 후미
우리말 활용사전 - 조항범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Dec. 2005
Analog Science Fiction and Fact, Dec. 2005

2005년 12월 10일 토요일

도종환,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 창작 교실

도종환 시인이 쓴 시 읽기/쓰기 입문서. 실천문학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내고 있는 '담쟁이교실' 시리즈 열두 번째 권이다. 여러 시를 소개한 다음, 시가 주는 느낌과 그 시상이 만들어지는 과정, 시상을 읽어내는 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예시가 많아 읽기 편했다. 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창작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찾아 읽어 보길 권한다.

여러 작가의 작품을 두루 넣었으나, 실천문학사와 도종환 시인이 선호하는 '경향'이 보이기는 한다.

2005년 11월 24일 목요일

이태준, 문장강화

원문은 1939년 글. 창비 1988년 판으로 읽었다. 이태준 선생의 강화 자체만으로도 읽는 맛이 있었고, 책 내용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예문이 많고 설명이 정확하며 구체적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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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1. 당일원족기
① 날씨 ② 가는 모양 ③ 가는 곳과 나 ④ 상상턴 것과 실지 ⑤ 새로 보고 들은 것 ⑥ 가장 인상 깊은 것 ⑦ 거기서 솟은 무슨 추억과 희망 ⑧ 이날 전체의 느낌 (p.145)

2. 수필의 요점
① 한 제의 글로 너무 길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작 길어야 20자 행으로 100행 내외라야 할 것.
② 상이나 문장이나 자기 스타일을 살리면서라도 이론화하거나 난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필의 맛은 야채요리와 같이 경미하고 담백해 향기를 살리는 데 묘미가 있다.
③ 음영적 관찰이 필요하다. 어떤 보잘것 없는 사람의 말 한 마디에나, 행동 하나에도 다 인생의 음영이 있다. 표면화한 사실에보다 음영으로 부동하는 것을 천명해주는데 현묘미(玄妙味)가 있다.
④ 품위가 있을 것. 그러나 겸허한 경지라야지, 초연해서 아는 체, 선한 체, '체'가 나와서는 능청스러워지고, 능청스러워선 오히려 품위는 커녕 천해지고 만다.
⑤ 예술적이어야 한다. 수필은 보통 기록문장은 아니다. 무슨 사물을 정확하게만 기록해서 사물 그 자체를 보도, 전달하는 데나 그치면 그것은 문예가 아니다. 어디까지 그네의 감정적 인상, 주관적 소회에서 서술해야 하는 것이다.

3. 문체는 사회적인 언어를 개인적이게 쓰는 것.

2005년 11월 21일 월요일

리처드 로드, 독일

휘슬러의 '큐어리어스'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독일에서 이십 여 년을 산 영국인 저자가, 외국인으로서 독일에서 생활하며 몸소 겪은 독일 사회/문화/사람들에 대해 쓴 책이다. 개인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는 한계는 있으나, 실제로 가서 생활할 경우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소한 정보가 많아 (ex 소유물을 무척 중시하므로 가능하면 물건을 빌려 달라고 청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재미있게 읽었다. 출국 전에 참고 삼아 훑어 볼 만 하다.

2005년 11월 16일 수요일

[잡기] 새로 주문한 책 (11/16)


프라이데이 - 로버트 하인라인 지음
독일(Curious시리즈) - 리처드 로드 지음
수필문학입문 - 윤오영 지음
다시 읽는 우리 수필 - 김종완 엮음

2005년 11월 10일 목요일

[잡기] 새로 주문한 책 (11/10)


Science Fiction Quotations: From the Inner Mind to the Outer Limits - Gary Westfahl (2005.10)
Voices of Vision: Creators of Science Fiction and Fantasy Speak - Jayme Lynn Blaschke (2005.2)
Critical Theory and Science Fiction - Carl Freedman (2000.2)
On SF - Thomas M. Disch (2005.6)

Glass Soup - Jonathan Carroll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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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사진/예술관련 외서 70% 할인 판매대에서 산 책 두 권.

Space Shuttle: the First Twenty Years - Tony Reichhardt
래핑까지 되어 있는 새 책을 만 오륙천원에 구했다. 앗싸.
Pastel Painter's Pocket Palette - Rosalind Cuth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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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외서 재고를 권당 3,000원에 팔고 있다. 대체 누가 볼까 싶은 청소년 도서와 매직더개더링, 스타워즈 등 시리즈의 노벨라이제이션이 대부분이나, 파묵 (하드커버가 3천원!), 커트 보네것, Catherine Asaro, 레이몬드 파이스트 등의 책도 잘 찾아 보면 군데군데 섞여 있다.
Crossfire - Nancy Kress
낸시 크레스의 책 중에 이 책 한 권만 안 샀었는데,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다니......
Star Wars Young Jedi Knights 1: Jedi Shadow - Kevin J. Anderson, Rebecca Moesta
스타워즈 책이 하도 많이 쌓여 있어서 엉겁결에 한 권.;
Forever Peace - Joe Haldeman
말이 필요없는 괴작.

2005년 11월 6일 일요일

Jonathan Carroll, Outside the Dog Museum

Jonathan Carroll의 1991년 작. 예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구판본을 쉬 구하지 못했는데, 올 7월에 Tor ORB에서 트레이드 페이퍼백으로 재간한 덕분에 드디어 보았다.

Sleeping in Flame(1988)의 주인공 Easterling 부부가 잠깐 등장하고, 역시 SiF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샤먼 Venasque도 다시 나온다.

명백히 판타지인 작품.(캐롤의 다른 소설들과 달리 호러나 SF의 기운(!)이 전혀 없다시피 하다.)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아무래도 캐롤의 경우 근작보다 예전 작품들이 더 재미있다. 근작으로 올수록 도취적이랄까, 필력은 여전하지만 이야기의 전개 속도 같은 면에서 읽는 사람의 페이스에 맞춰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어쨌든 이번에 나온 Glass Soup도 어서 사서 읽어야겠다.

2005년 10월 29일 토요일

Jeffrey Ford, The Girl in the Glass

ISBN: 0060936193

8월에 출간된 Jeffrey Ford의 최근작. 유령을 본 남자의 얘기라기에 판타지 스릴러이리라 예상했으나, 읽고 보니 'Historical Suspense' 카테고리에 들어갈 작품이었다. 출간한 곳도 하퍼콜린스의 서스펜스 임프린트 'Dark Alley'다.

1920년대 대공황기를 살아가는 사기꾼과 멕시코계 소년의 모험을 다룬 책. (지금은 졸려서 일단 여기까지만 써 둔다.) 포드의 글솜씨는 날이 갈수록 느는구나. 오래 오래 살며 좋은 글을 많이 써 주길 바란다.

2005년 10월 18일 화요일

Catherine Asaro, Schism: Part One of Triad

Catherine Asaro의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 10권이자, Triad 삼부작 중 첫째 권. 시리즈 1, 2권의 주인공인 소즈가 군아카데미에 입대했을 때를 다루고 있다. 시리즈 내 시간선이 복잡한데다, '죽은 줄 알았으나 살아 돌아온 왕족'이 점점 늘어나서 헷갈린다. -_-

가볍게 훑을 책을 찾다가 집어들었는데, 딱 기대한 만큼이라 즐거웠다. 설렁설렁 읽었다.

2005년 10월 14일 금요일

2005년 10월 13일 목요일

홍난파, 월광곡 (범우문고 108)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할인 판매할 때 샀던 책. 작곡가나 연주가들에 대한 에피소드와 음악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글이 몇 편 실려 있다.

2005년 9월 28일 수요일

[잡기] 새로 주문한 책 (9/28)

A Princess of Roumania by Paul Park
Girl in the Glass by Jeffrey Ford
Outside the Dog Museum by Jonathan Carroll
The Cambridge Companion of Science Fiction by Edward James(ed.)
Speculations on Speculation: Theories of Science Fiction by James Gu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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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헤인 시리즈 세 권과 젤라즈니의 '변화의 땅'이 들어왔고, '그린빌에서 만나요' 2권과 호에로 펜 뒷권, 허브 9월호, x,y,z,t : dimensions of science fiction, Constellation 도 9월 중에 구입. F&SF 정기구독 갱신(05년 12월 호부터), Locus는 정기구독 기간이 끝났으나 갱신을 못 하고 있고, Interzone과 [다크판타지/호러/슬립스트림으로 완전히 방향을 돌린] TTA는 재구독 않기로 결정.

2005년 9월 27일 화요일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Sep. 2005

Novelet
Magic For Beginners by Kelly Link

Short Stories
"A Quantum Bit Exists In Two States Simultaneously: On" by David Gerrold
"Age Of Miracles" by Richard Mueller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 by Carter Scholz
"What I Owe To Rick" by Arthur Porges
"The Housewarming" by Albert E. Cowdrey
"The Denial" by Bruce Sterling
"A Quantum Bit Exists In Two States Simultaneously: Off" by David Gerrold

Departments
"Books To Look For" by Charles De Lint
"Books" by K.J. Killheffer
Films: Of Mice and Long-Awaited Movies by Kathi Maio

2005년 9월 24일 토요일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Oct. 2005

Novellas
"The Calorie Man" by Paolo Bacigalupi
"Help Wonted" by Matthew Hughes
"Two Hearts" by Peter S. Beagle

Short Stories
"Helen Remembers the Stork Club" by Esther M. Friesner
"Foreclosure" by Joe Haldeman
"Spells For Halloween: An Acrostic" by Dale Bailey
"Billy And The Ants" by Terry Bisson
'The Gunner's Mate" by Gene Wolfe
'Fallen Idols" by Jaye Lawrence
'Silv'ry Moon" by Steven Utley
"Echo" by Elizabeth Hand
"Boatman's Holiday" by Jeffrey Ford

Departments
"Books To Look For" by Charles De Lint
"Musing On Books" by Michelle West
'Films: Stars Wars, They're Not" by Lucius Shepard
"Curiosities" by Douglas A. Anderson
Coming Attractions

e-book목차가 예전의 별도 목차 검색어 지정식에서 종이책의 페이지를 그대로 딴 방식으로 바뀌어 몹시 불편했다. 전체적으로 대단히 만족스러운 호였다. 제프리 포드의 "사공의 휴일'은 지옥을 배경으로, '이야기하기(storytelling)'라는 소재를 멋지게 풀어낸 우화로, 역시 제프리 포드! 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좋은 작품이었다. 내년 네뷸러나 세계환상문학상 [수상까지는 몰라도] 후보작으로는 쉬 오를 듯. 정말 이 작가는 잔잔하게 가슴을 울리는 글을 너무나 잘 쓴다.

Along each side, worked into the gunwales well above the waterline, was a row of eyeless, tongueless faces - the empty sockets, the gaping lips, portals through which the craft breathed. Below, in the hold, there reverberated a heartbeat that fluttered randomly and died every minute only to be revived the next.
-Jeffrey Ford, 'Boatman's Holiday'

ㅠ_ㅠ)b

에코와 나르시스의 신화를 담은 엘리자베스 핸드의 '에코' 도 괜찮았고. 테리 비슨의 꽁트는 테리 비슨 다웠다. - 짧고 소름끼쳤다. 조 홀드먼의 단편은 비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말로 어디서 본 듯한 글이었다. 외계인 부동산업자가 인간에게 와서 너네 땅 내놔라.....하는 얘기, 전개 면에서 거의 똑같은 단편이 있었단 말이다! 어르신, 대체 몇 차원으로 가시고 있는 겁니까.......편집부에선 이걸 또 왜 실어주느냔 말이다.......orz

목차에는 빠져 있는, 팻 머피와 폴 도허티가 연재하는 과학 칼럼이 있는데, 이번 호에서는 토성의 가장 큰 위성 타이탄을 다뤘다.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라면 타이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쓰고 싶어질 법한 칼럼이었다.

2005년 9월 15일 목요일

Analog Science Fiction and Fact, Oct. 2005

Novelettes:
"Language Lessons" by Amy Bechtel
"The Wrong Side of the Planet" by Joe Schembrie
"Zero Tolerance" by Richard A. Lovett
"Entropy's Girlfriend" by Robert J. Howe
"The Doctrine of Noncontact" by Catherine Shaffer

Short Stories:
"Infinity's Friend" by Dave Creek
"Smiling Faces in Hog Heaven" by Stephen L. Burns
"The Time Pit" by Stephen Bax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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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재미 없을 수가 있을까! 꾸역꾸역 읽다가 못 참고 스티븐 박스터 한 편 남기고 덮어버렸다. 아날로그가 서사가 약한 잡지이긴 해도, 보통 한 편 정도는 괜찮은 게 들어 있곤 하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제목밖에 볼 게 없었다. 심지어 아날로그의 강점인 과학적 아이디어들도 시시하고 식상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을 가진 '엔트로피의 여자친구' 는 사건이 약하고 해결이 두루뭉술할 뿐 아니라, 인물 하나하나가 어찌나 전형적인지 지금까지 열 번쯤은 봤던 사람들 같았다. (거의 비슷한 스타일의 주인공을 내세워,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이끌어냈던 Geoffrey A. Landis 의 'Dark Lady'같은 글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글들도 오십 보 백보.

으아, 으아, 으아. 이렁저렁 하면서 밀린 아날로그가 일 년 치쯤 쌓여 있는데, 도무지 읽고 싶지가 않다.

2005년 9월 7일 수요일

민족문화추진회, 고전 읽기의 즐거움

민족문화추진회원들이 번역한 짧은 고전 글을 모았다. 소소한 일화, 세태에 대한 간략한 고민 등 대엇 페이지 남짓한 읽을 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은 표지가 달랐으나, 구판일 뿐이었는지 목차를 보니 내용은 같다. 내용상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대중적인 글을 다양하고 신중하게 골라 옮긴 티가 난다. 읽을 만 한 책.

2005년 8월 27일 토요일

S.S. 반 다인, 그린살인사건

중역본은 피해 왔으나 원서 E-book이 나와 있지 않고, 서점까지 사러 가기는 귀찮아서 북토피아에서 이북으로 구입했다. 읽는 내내 예전에 읽었던 책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동서추리문고는 다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히 나질 않으니 원. 어쨌든 범인이 누구인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한 덕분에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사소한 트릭에 치중하기보다는 직선적으로 승부하는 본격 추리물로, 주인공의 [따져보면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수다가 굉장하다.

2005년 8월 25일 목요일

콘노 오유키,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10 - 레이니 블루

아우님의 평을 빌려 쓰자면, "다음 권에서 어떻게 진행될지 뻔한데도 막 눈물이 나더라."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유미가 우산을 잃어버리고 돌아와 바닥을 치는 장면에선 가슴이 찡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갖고 있던 읽을 거리가 이 책 한 권 뿐이라, 세 번도 넘게 읽었다.

2005년 8월 20일 토요일

호어스트 에버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스노우캣이 yes24 칼럼에서 추천한 책을 승민오빠가 구입하여 읽은 다음 내게 선물한 (헥헥) 책. 무진장 게으른 주인공의 일상을 위트있게 그린 소품이다. 부담없이 읽을 만 하지만, 유머 자체에 대해서는 취향에 따라 반응이 다르겠다. '스노우캣이 추천할 만한 책' 이랄까나. 나는 즐겁게 읽었다.

그런데 제목을 '세상이 언제나~'가 아니라 '세상은 언제나~'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려나.

2005년 8월 17일 수요일

콜린 덱스터, 옥스퍼드 운하 살인 사건 (모스 경감 시리즈 1)

오호라, 재미있었다. as님의 추천을 받아 집어들었는데, 괴팍한 유머 감각이 일품이다.

신석정, 촛불 (범우문고 195)

수필집은 시집이나 소설과 달리 찾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열린책들에서 한국 대표 시인 초간본 선집을 냈던데, 수필의 경우 [있을 법도 한데] 이런 시리즈를 본 적이 없다. 한국 대표 단편 전집 - 내가 어렸을 때 본 것은 스무 권인가 서른 권 짜리 세로쓰기 전집이었다 - 의 수필 버전 같은 것도 없다. 처음 부터 단행본이 아니라 잡지나 신문 같은 곳에 주로 실리고, 잡문 혹은 사적 여흥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흩어지는 경우가 태반이요, 글이 제법 남아 있다 해도 '작가' 전집의 일부로 '수필/기행문/서간문' 이런 책 한 권에 들어간다.

그렇다 보니 수필, 특히 3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의 수필만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참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일단 원하는 글을 작가 전집 중 한 권만 달랑 사거나, 욕심이 과해 전집을 통채로 사 놓고 몇 년이 지나도록 관심사가 아닌 뒷부분은 래핑도 뜯지 않고 두거나 (ex)근원 김용준 전집의 '조선미술대요'; ), '고등학생을 위한 현대수필' 혹은 '논술에 나오는 우리글' 같은 책을 뒤진다. (ex)요새는 돌베게 출판사에서 나온 '조지훈-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3'을 읽고 있다.) '모던 수필'을 편집한 방민호 님은 서문에서 조선일보 같은 당대 신문이나 '문장' 같은 잡지를 하나 하나 뒤져 좋은 산문을 찾았다 했는데, 보통 독자의 경우 그런 자료에 접근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중에서 좋은 글을 찾아낼 안목도 부족하다. 태학산문선 300번대가 현대 수필이긴 하지만, 아직 두 권 밖에 안 나왔다.

여하튼 나 같은 사람에게 범우문고는 다른 책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산문이 무진장 쌓여 있다는 점에서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시리즈다. 해외 소설 쪽은 저작권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고 저렇게 쏟아내는 걸까, 신경쓰일 때가 많지만(...) 한국 수필 쪽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게다가 저렴하기까지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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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쓰자면 :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로 유명한 시인 신석정의 수필 몇 편을 모은 책. 잘 읽히지 않는 글이 몇 있지만,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런 구절도 있다.

언제나 황혼은 이 마을 서편에 있는 묵은 산장(山將) 밤나무 숲에서 걸어 나온다. 상소산에서 넌지시 내려온 산줄기가 묵은 산장을 병풍처럼 휙 둘러 황개재라는 작은 재가 되고, 나직한 황개재 너머로 푸른 하늘이 가로 길게 눕고, 그 하늘에 능금빛으로 붉은 저녁놀이 삭은 뒤에야 황혼은 겨우 그 재를 넘어서 밤나무 숲을 거쳐 우리 마을을 찾아오게 된다.

'촛불'의 첫 단락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한 걸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고쳐 썼을까? 즉흥적인 심상을 그대로 옮겼을까? 아, 너무 훌륭하잖아. ㅠ_ㅠ 글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할 수 있으려면 대체 글을 얼마나 많이/열심히/잘/꾸준히 써야 하는 걸까?

2005년 8월 12일 금요일

Shanna Swendson, Enchanted, Inc.

ISBN: 0345481259

Katie Chandler는 택사스 시골에서 가족 기업(이라고 부르고 가게라고 읽는다)의 경영을 맡고 있다가, 더 큰 세상을 찾아 뉴욕에 온 20대 중반 아가씨이다. 가족들은 온갖 해괴한 일이 다 일어난다는 뉴욕행을 반대했지만, 마침 셋이 사는 아파트에 방이 하나 비었으니 오라며 대학 시절 친구들이 부르자, 케이티는 큰 결심을 하고 화려하고 커다란 도시로 왔다.

그리하여 도시 생활 일 년. 기업이라기에 민망한 작은 가게를 경영한 케이티의 경험은 세련된 도시에선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케이티의 직속 상사인 Mimi는 쉴새없이 짜증을 내며 케이티를 들들 볶아댄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건 부끄러워서 못 하겠다. 다른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새 직장 찾기도 쉽지 않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회사까지 걸어서 출퇴근하고, 도시락을 싸가 혼자 사무실에 앉아 먹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케이티를 더 괴롭게 하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뉴욕에 있는(사는?) 괴상망측한 것들이다. 도시 사람들이 주위에 무관심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떻게 커다란 날개를 단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걸까? 저쪽 지붕에 앉아 있는 건 틀림없이 가고일인데? 케이티의 눈에는 능글능글 못생긴 아저씨인 사람을 마치 조니 뎁이라도 되는 양 불타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도시 아가씨들의 패션 감각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제 케이티는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로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때, 이메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처음에는 스팸메일이겠거니 하고 삭제하고,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을 제안하는지도 알 수 없는 모호한 내용이 수상하여 외면했지만, 정말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대며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쏟아붓는 상사와 또 한 판 하고 나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홧김에 약속을 잡고 스카우트 제의를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케이티에게 접근한 기업은 MSI, Inc. 풀어 쓰자면 Magic, Spells, and Illusions 이다. 여기에서 케이티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a)세상에는 마법이 실존하고, (b) 마법사며 각종 책에나 나오는 생물들도 존재하지만 (c)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법에 의해 '영향을 받을 정도'의 마법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마법에 의해 엘프나 가고일, 능글능글한 얼굴 같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법을 실행할 수 있는 동시에 마법에 영향을 받는 존재가 바로 마법사다. 그렇다면 케이티는? 그녀는 바로 마법이 '한 톨도 없어서', 마법을 행할 수도 없고 마법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 면역자였다!

면역자들은 마법 스펠을 연구하고 판매하는 MSI같은 기업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간단한 예를 들어, 만약 거래처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계약서에 써 넣고 잠시 보이지 않는 마법을 건다면, MSI의 마법사들은 모두 마법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조항을 보지 못한다. 이럴 때 면역자들이 옆에서 계약서의 내용을 읽어 주면 자기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지 비교해 볼 수 있다. MSI는 상당히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케이티를 스카우트하고, 케이티는 미미에게 속에 있던 말을 다 하고 한결 후련해진 마음으로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리하여 케이티는 마침 위기를 겪고 있는 MSI의 일원으로서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잠깐, 이건 농담) 애쓴다. F&SF의 리뷰를 보고 흥미가 동해 구입했는데, 술술 넘어가는 재미있는 책이어서 단숨에 읽었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 사실은 그 평범함 때문에 특별해진다' 는 설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단, Contemporary Romance로 분류되는 데 비해 로맨스랄 부분은 거의 없다 - 주인공이 소개팅을 몇 번이나 하고, 새로이 만난 이 사람 저 사람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생각밖에 안 한다. -_-; - 지나치게 Contemporary해서 몇 년 뒤엔 잊혀질 듯한 수준/내용인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여름철 잠 안 올때 집어들기에 안성맞춤이다.

2005년 8월 8일 월요일

Neil Gaiman, Sandman 10 : The Wake

마지막권. 이별과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뒤로 D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집 11권이 있다고는 하나,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확 든다. 아주 좋았다.

2005년 8월 7일 일요일

2005년 8월 6일 토요일

Neil Gaiman, Sandman 8 : The World's End

Neil Gaiman, Sandman 6 : Fables and Reflections

단편 모음으로 이루어진 6권. 역시나 하나같이 재미있었고, 'Orpheus'에서, 지금은 사라진 형제 파괴(Destruction)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특히 흥미로웠다. 칼리오페도 다시 나온다. '꿈(Dream)이 사랑에 빠져 정신없다' 는 얘기가 에피소드 두 편에서 나왔는데, 다음 권에서 다른 식으로 변주가 될 부분인지, 전권의 에피소드를 칭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Parliamnt of Books'에 등장한 아기 버전 죽음과 꿈, 아벨과 카인 모습은 팬 서비스인 듯? 정말 귀여웠다. 마지막 에피소드 Ramadan은 코랄린의 작화 담당 맥킨(McKean)의 그림인 것 같다. 다른 권들과 달리 각 에피소드의 작화 담당을 따로 명시하지 않은 듯 한데, 급히 보느라 놓쳤을 수도 있고......일단 다 읽고 나중에 다시 찾아 봐야지.

빨리 다 읽어버리기 아까웠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이러면 안 되는데 orz'라고 생각하며 허겁지겁 읽었다. 지금은 8권을 보는 중.

2005년 7월 24일 일요일

조희룡, 매화 삼매경

ISBN 8976268377

태학산문선 108 번, 호산외기의 저자이자 추사의 제자인 조희룡이 쓴 짦은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호산외기의 조희룡이 서화가 조희룡인줄 이제야 알았다. 서화와 글이 크게 나뉘지 않았던 당시 문화계를 생각해 보면 동시대의 동명이인일 가능성보다 동일인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도, 지금까지 이 둘을 연결지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책은 꽤 즐겁게 읽었다. 19세기를 산 여항인으로서 '호산외기'같은 저서를 보아서나, 추사와 관련되었던 점을 보아서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았을 텐데 여기 모인 단문들에는 그늘이 거의 없어 읽기 편했다. 매화 그림에 대한 글, 지인들에 대한 글, 호산외기의 일부 등이 고루 실려 있다.

정민 교수와 안대회 교수가 기획한 태학산문선 문고본은 상당히 매력적인 시리즈다. 처음 이 시리즈를 발견했을 때는 번호가 100번 대인 것을 보고 '아니, 이렇게 좋은 책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100권도 넘게 나왔단 말야? 읽을 거리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하고 무척 좋아했으나, 사 놓고 보니 101번부터 한국 고전, 201번부터 동양고전, 301번부터 한국 산문, 401번부터는 동양 산문....식으로 나가는 기획이라 다 합해 봐야 십수 권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데, 마치 제일 먹고 싶을 때 먹으려고 찬장에 숨겨둔 초콜릿을 다른 사람이 먼저 먹어버린 양 서운했다. 나는 기쁨에 눈이 멀어, 인터넷 서점 검색 결과에 이 산문선이 몇 권 밖에 안 나왔을 때에도 '나머지는 절판되어 도서관에 있는가보다.'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