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7일 수요일

Caroline Stevermer, A College of Magics

ISBN: 0765342456

로커스에서 Caroline Stevemer가 얼마 전에 낸 A Collge of Magics 시리즈 둘째 권 'A Scholar of Magics'에 대한, '청소년을 겨냥했지만 19세기 유럽 사회와 인물 군상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한 어른에게 더 재미있을 마법 판타지' 운운하는 호평을 읽고 구미가 동해, 책 값의 두 배에 가까운 우송료를 내고 첫 권인 이 책을 샀다.

속았다. -_-

세계는 동서남북의 지킴이가 유지하는 마법의 균형 하에 운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몇십년 전, 북쪽 지킴이(the warden of North)가 균형을 유지하는 대신 자기 나름의 선을 추구하려고 균형을 깨뜨리면서, 마법의 균열이 생겨났다. 방치해 두면 점점 넓어져 마침내는 세상을 종말케 할 균열이다. 그러나 북쪽지킴이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동서남 세 곳의 지킴이들은 죽지도 못한 채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간신히 균열이 더 커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다.

주인공인 열 여덟 살 고아소녀 Faria는 Galazon의 예비 영주이지만, Galazon을 통치하지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에 손을 대지도 못한 채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Galazon을 대신 통치하고 있는 사이나쁘고 성미 고약한 삼촌은 Faria를 상류층 여학생들이 가는 기숙학교 Greenlaw College로 보내버린다. Greenlaw는 마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여기에서 주인공은 친한 친구, 신분 및 사회관계상 계속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고약한 적, 삼촌이 자기 몰래 딸려 보낸 보디가드 등을 만난다.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21살 생일만을 기다리던 Faria는 학업도 끝내지 못한 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렇게 보아서는 평범하긴 해도 흠 잡을 데 없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가 없다.

우선 주인공의 나이와 저자가 겨냥한 독자의 연령층이 일치하지 않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운 다음, 그 주인공에게 열 너댓살 짜리나 할 법한 언행을 지키니 어찌 재미가 있겠는가. 주인공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짜증을 내거나, 주인공의 나이를 생각하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대사를 심각하게 읇을 뿐이다. 말 할 때는 열 살이고 옷 입고 키스할 때만 스무 살이다. 키스 다 하고 사랑을 속삭이려면 다시 열 두 살로 돌아간다. 이래서야 주인공을 18~21살로 설정한 보람이 없잖아? 이야기의 진행 속도에도 문제가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의 첫 150페이지 - Faris가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 가 이야기 진행상 (전혀 필요 없지는 않아도) 별로 중요하지 않고, 뭘 배우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학교 생활담으로 끈적하게 차 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독자들이 가질 법한, 기숙제 대학과 교양 교육에 대한 환상이라도 충족시켜 주려는 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을 읽고 유치하다는 흠을 잡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YA 도서라고 꼭 유치하라는 법은 없다. 어리다고 감정의 절절함이 덜하고 고민의 진지함이 부족하지는 않다. 잘 쓴 동화책, 아니 잘 쓴 모든 책에는 연령을 초월하는 솔직한 안정감이 있다. 일곱 살이 읽는 그림 동화책에서도 가슴 저미는 감동을 느낄 수 있고, 1318 문고를 읽다가도 눈가를 훔칠 수 있다. 그것이 좋은 책이다.

혹시 마무리가 초중반의 부족함을 덮어줄까 싶어 끝까지 읽었다. 능숙하고 깔끔하게 마무리지어 지기는 하나, 어른도 재미있게 읽을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는 전형적인 '오직 10대 중반만을 겨냥한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주인공이 적에게 "여섯 살 짜리처럼 말하지 좀 마!" 라고 소리치는 부분을 읽으며, "넌 여덟 살 짜리처럼 말 좀 안 할 수 없냐?" 라고 생각했다.

덧: 이 책이 저연령층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저자가 굉장히 한정된 어휘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를 수 있는 상황에서 똑같은 어휘를 반복해서 사용하니 느낌도 살지 않고 글 자체가 지겹다.

댓글 3개:

  1. 사놓고 읽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억울하다고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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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리다고 감정의 절절함이 덜하고 고민의 진지함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말씀 정말 맞는지... ^^;; 어렸을 때 저는 정말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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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로래인언니/1. 아직 안 사셨다면 구입을 말렸겠지만 벌써 사셨다니 저와 취향이 달라 즐겁게 읽으시기를 기원할 수 밖에... 주인공이 20대라는 설정을 무시하고 14살 정도로 보고 읽으면 훨씬 재미있을 [지도 모르는] 책입니다.

    2. 로래인 언니보다 어린 제게 그리 반문하시면, 저는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처지에 놓이겠죠?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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