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6일 목요일

리처드 파인만 & 랄프 레이튼, 남이야 뭐라 하건!

ISBN : 8983711523


파인만은 인기가 있다. 훌륭한 물리학자일 뿐 아니라 유명하다. 꽤 잘 생긴 얼굴, 폭탄머리 아인슈타인 만큼이나 강렬한 대중 이미지, 백프로 미국 출신 이론물리학자라는 호감 요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준 덕분에, 파인만은 그가 원했든 그렇지 않든 '팔리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잡탕 책도 번역 출간이 되는 거다.

이 책의 전반 삼분의 일은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과 상당히 겹치는 자잘한 수재 에피소드와, 지금까지 소개된 적은 없지만 유명인의 사생활에 각별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길 그의 첫 결혼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 뒤를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다네요'류의 에피소드와 파이만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로 사료적 가치가 없어 보이는 개인적인 편지 몇 편이 따른다. 그 나머지는 뜬금없게도 챌린저호 폭파 사고에 대한 파인만과 조사단의 문제점 분석 과정과 파인만이 작성한 결과 보고서이다. 그에 더해 과학의 가치에 대한 연설문도 실렸다.

파인만의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만 하다. 또 들어도 재밌는 얘기라는게 있기 마련이고, 1930-60년대 물리학 인물사는 주인공이 누구든 그 자체로 피가 끓는 열혈물이니까. 챌린저호 폭파 사고의 원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도 이 사고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꽤 흥미로웠다. (요약: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하지만, '남이야 뭐라 하건'이 파인만의 사생활과 챌린저호 사건이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두 가지 소재를 한꺼번에 우겨넣은, 초점도 없고 독자도 애매하고 심지어 장르까지-위인전이냐, 자서전이냐, 과학교양서이냐- 불분명한 책이라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파인만의 사생활이 궁금하면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를, 파인만에게서 물리학 강의를 듣고 싶으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나 'Q.E.D. 강의'를 집어드는 쪽을 권한다.


덧: '생각되어진다'같은 표현은 번역자가 틀려도 편집 데스크에서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댓글 6개:

  1. 저런 ㅁㅅㅁ;; 설마 제 홈에서 보고 읽어보신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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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하, 아닙니다. 읽은지 좀 되었어요. 'ㅁ'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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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챌린저호 사건에서 파인만이라는 스타과학자는 미디어의 산물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자료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올초 수업 때문에 챌린저호에 관한 글을 두 편 읽었는데, o-ring 문제는 예전부터 다들 알고 있었던 거라고 합니다. 챌린저호 발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추위를 무릅쓰고 강행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인 내용이 담겨 있더군요. 뭐 결국엔 행정적인 문제도 있고 이 정도는 견디겠지 하면서 발사했는데 결국...터졌죠. 요새 기억력이 물고기 수준이라 자세한 내용은 가물가물......책을 어따 뒀더라....-_-;



    아, 아까 장터에서 뵙고 생각나서 간만에 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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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Karidasa님/ 그러니까 요약하면 '날씨가 너무 추워서 사고가 났다.' :-P

    장터에서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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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래서 내가 더 이상 파인만 책을 안사는거지. 죽은 사람은 새로운 글을 쓰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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