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8일 수요일

Catherine Asaro, 'The Saga of the Skolian Empire'


캐서린 아사로(Catherine Asaro)는 하버드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전공했고, 학위를 받은 후 캐나다와 독일의 연구소에서 일했다. 남편은 나사의 연구원이고 딸은 수학자이다. 과학소설 작가들 사이에 아주 흔하지는 않아도 유난스럽게 드문 이력은 아니다. 하지만 캐서린 아사로는 물리학자인 동시에 발레리나이다. 무용을 전공하기 위해 들어간 대학에서 물리학으로 진로를 바꾼 그는 지금까지도 발레나 재즈댄스를 가르치고 있다. 이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가지 경력이 섞여 등장한 것이 바로 로맨틱 스페이스 오페라, 스콜리안 엠파이어시리즈이다.

지금까지 총 아홉 권이 나온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인류는 드디어 초광속 비행(FTL; faster-than-light)의 방법을 알아냈다. 지구인들은 승승 장구하여 우주로 나간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벌써 인류가 온 우주에 쫙 깔려 있는 것이다. 알고 보니 모든 인류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을 가지고 지구에서 뻗어나온 육천 년 전 인류의 후손이다. 이후 은하는 잠깐 루비 제국(Ruby Empire...이름 참-_-)의 텔레파시들이 지배하는 시기를 맞았으나 이것은 아득한 과거로 이들의 기술은 이미 거의 잊혀졌다. 지구인들이 이제 겨우 지구에서 기어나왔을 때 은하는 루비 제국의 후손들이 상징적인 지위를 가지는 스콜리안 제국(The Skolian Empire)과 역시 루비 제국의 후손이지만 유전자 조작 과정에서 뭔가 꼬여 생겨난 철저한 계급제 사회 에우비안 제국(The Eubian Empire)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다. 지구인들은 뒤늦게 이 둘 사이의 권력 다툼에 끼어서 균형을 유지하며 이득을 얻는 중립 지대 역할을 맡는다.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스콜리언 제국이다. 스콜리안 제국과 에우비안 제국은 대립을 피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바로 루비 제국의 피를 이어받은 스콜리안 제국의 '스콜리안'들이 엄청난 텔레파시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스콜리안이란 스콜리안 제국의 일반인이 아니라, 루비 제국의 후손인 딱히 귀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제국에서 대단한 상징력을 지닌 스콜리안 집안에서 딴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텔레파시 능력은 0부터 10까지로 측정이 가능하고, 10보다 한참 위로 정말정말 드문 사람들이 바로 스콜리안이다. 텔레파시 능력은 열성 유전이고 양 부모 중 약한 사람의 능력을 이어받는 것이기 때문에 드물고, 텔레파시 능력이 강할수록 다른 유전적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건강하고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자는 아주 희귀하다. 아사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0에서 3까지의, 일상 생활에서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는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스콜리안들이 강력한 텔레파시라는 것과 에우비안 제국-이들을 대개 Trader라고 한다-과 대립하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이는 바로 트레이더들의 황제, 에우비안 집안이 루비 제국의 실패에서 비롯된 끔찍한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루비 제국은 다른 문제점을 없애고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자를 만들고 싶어했으나, 그 과정에서 그만 트레이더라는 텔레파시 능력이 있기는 한데 생각을 내보내는 쪽이 망가져서 받아들이는 것 밖에 못 하고, 그나마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만다. 말 그대로 '타고난 새디스트'인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트레이더들은 에우비안이라는 자신들의 제국을 세우고 텔레파시들을 잡아다가 provider라는 노예로 부린다. 이들을 마구마구 괴롭히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프로바이더의 텔레파시 능력이 강하고 고통이 클수록 쾌감이 커진다. 그러니 은하 최강의 텔레파시 집단인 스콜리안 왕족은 에우비안 왕족 입장에서는 최상품의 노예다. 스콜리안 왕족 입장에서 보면 남을 괴롭히면서 좋아하는 에우비안은 인간도 아니다. 이 둘이 당장 부딪히지 않는 이유는 물론 서로 가진 힘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에우비안이 철저한 계급 사회인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트레이더의 핏줄이 강할수록, 즉 그쪽 유전자가 뚜렷할수록 상위 계층이다. 생김새와 텔레파시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스콜리안의 군대가 발달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트레이더에게서 생명을 지키려면 강한 군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스콜리안들은 그래서 에우비안보다 신속한 판단과 대응이 가능한 텔레파시 능력을 활용해 우주선과 감응하여 싸우는 엘리트 군대를 끊임없이 양성해낸다.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의 아홉 권은 모두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는 스콜리안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첫 권 Primary Inversion은 스콜리안가문의 딸이자 군인인 Soz와 에우비안 황제가 스콜리안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 프로바이더를 '활용', 비밀스럽게 만들어낸 텔레파시 능력자인 아들-즉 황태자- Jai(Jabrial ll)의 사랑 이야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하면 간단하겠다. 씩씩한 소즈가 에우비안에 잡혀가 허수아비 황제 노릇을 하게 된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균형을 깨뜨리고 전쟁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속편 The Radiant Seas이다. 이 두 권 사이에는 평행우주의 다른 과거 지구로 떨어져 사랑에 빠지는 소즈의 조카 이야기, Catch the Lightning과 소즈의 남동생으로 폐쇄된 행성에 난파하여 열 여덟 해를 보내는 Karlic의 이야기 The Last Hawk가 있다. 그 뒤로 역시 그 형제로 시골 행성에서 유배 비슷한 생황를 하는 Havyrl의 사랑담 The Quantum Rose, 18년만에 폐쇄 행성을 빠져나왔다가 에우비안에게 납치되어 버린 칼릭의 Ascendant Sun, 소즈의 고모이자 시언니(소즈의 제일 큰오빠와 결혼했다.)의 Spherical Harmonic, 시간을 과거로 돌려 소즈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을 다룬 Skyfall , 어머니가 전쟁을 일으키고 아버지를 찾아 떠난 와중에 지구에 피신해 있다가 제발로 에우비안 제국에 걸어들어가 황제 자리를 쥐는 소즈의 아들 Jai(Jabrial lll)의 고생담 The Moon's Shadow가 이어진다. 열 번째 권인 Schism : Part One of Triad는 올해 겨울에 나온단다.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는 화려하다. 세 권력간의 미묘한 관계, 각 권력 내부의 더 미묘한 다툼, 전쟁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마음으로 말하는 -텔레파시 능력자라는 설정이 얼마나 로맨틱하게 활용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잘생기고 강한 '귀한 핏줄'들의 사랑이다. 게다가 그냥 사랑도 아니라 초 새디스트들에게 맞서며 지켜야 하는 사랑이다. 아사로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다. 이 시리즈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The Quantum Rose의 네뷸러-인기상 휴고도 아닌 작가협회에서 심사해서 주는 네뷸러!- 수상은 지금까지도 '최악의 선정'이네 어쩌네 하는 말을 듣고 있다. 아사로가 설정한 FTL의 개념은 몇 달마다 한 번씩 SF뉴스그룹에서 말이 되네 안 되네 하는 소릴 듣는다.(흥미롭게도 아사로는 스콜리언 시리즈를 발표하기 전에 여기서 쓰인 초광속 비행 개념을 학회지에 정식으로 발표했었다.) 하지만 재미있다. 재미있는데 어떡하나. 재미있고 부담없는 사이언티픽 로맨스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특히 양자역학의 주요 개념을 로맨틱하게 해석한 The Quantum Rose의 챕터 제목 해설은 거의 로맨틱 사이언스 개그라 할 만 하다.(본편보다 더 웃겼다) 이 시리즈는 로맨스 쪽에서 사파이어 상 등을 받기도 했다.

반드시 출판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운명적 사랑부터 근친상간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내키는 커플을 골라잡으면 된다. 매 권마다 아사로는 이해하기 충분할 만큼 설정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과학소설 뉴스그룹에서 사파이어 수상작인 Catch The Lightning을 소프트 포르노나 다름없다고 비추하고, The Last Hawk를 짜임새가 있는 편이라고 추천하는 사람도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저 두 권은 오십 보 백 보이지만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The Last Hawk가 낫다고 본다. 소즈의 이야기 두 권도 재미있고, Ascendant Sun은 The Last Hawk과 바로 이어지는 속편인데다 소즈의 아들 Ja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전체 흐름을 따라가고 싶으면 함께 읽는 편이 좋다. Sperical Harmonic에 대해서는 별반 기억나는 것이 없다. Skyfall은 정말 재미없어서 억지로 읽었고, The Moon's Shadow는 SM이라서(으응?) 전권보다 나았다. 근작으로 올수록 확실히 긴장감이 떨어진다.


최근 아사로의 스콜리안 엠파이어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솔직히 Terry Goodkind의 시리즈 따위가 연상된다. 가슴이 아플랑 말랑 하누나. 특히 Skyfall에서는 좀 더 좋은 이야기꾼이 될 수 있는 작가가 시리즈물로 인기를 얻으면서 편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장르사적으로 유의미한 책, 두고두고 마음의 양식이 될 책을 찾는다면 이 시리즈는 잊는 편이 낫다. 하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신나는 사랑 이야기, 재밌게 낄낄거리고 돌아서서 잊어버려도 좋은 책을 원한다면, 왼손에는 이 책을 들고 오른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느긋하게 앉아 빈둥거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댓글 4개:

  1. 뭐 누구에게나 뻔히 유치하지만 그래도(!) 즐기는 책 등의 취미는 있는거죠. 그걸 홀라당 빼앗아간다면 참 살 맛이 나지 않을 것이고.



    참. IROSF 최근호 (7월 27일자) 보셨나요? Editorial을 꼭 읽어보시기를. 최근 elitism 얘기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답글삭제
  2. Thankfully the dreadfully dull Catherine Asaro story that got on the Hugo ballot was nowhere to be seen in the Locus Poll.



    Emerald City (http://www.emcit.com/emcit107.shtml#Locus) 최근호를 읽다가 눈에 들어온 구절입니다. ^^;;

    답글삭제
  3. Best Fantasy Novel, on the other hand, is deeply depressing until you get down to Mary Gentle’s 1610 at #5 and Tad Williams’ The War of the Flowers at #6. Of course this may be because two of the best fantasy novels of last year, Veniss Underground and The Etched City, are in the Best First Novel category, where they finished #2 and #4 respectively (and both should have been higher).

    -> Emerald City의 편협한 분석이 돋보이는군요.(((- _-)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