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6일 월요일

Nancy Kress, 'The Beggar Trilogy'

ISBN: 0380718774

/ 0312857497

/ 0812544749


이 블로그의 첫 게시물에서 나는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단편으로 낸시 크레스(Nancy Kress)의 'Out of all them bright stars'를 꼽았다. 사실 이 단편을 읽었던 날 오후에 나는 낸시 크레스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중편을 한 편 더 읽었었다. 침대에서 빈둥거리다가 별 생각 없이 펼친 도조와(Gardner Dozois)의 연간 과학소설 걸작선 9권 맨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어정쩡하게 침대에 기댄 채로 그 중편을 단숨에 읽고 - 고쳐 앉을 틈도 없었다- 저자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낯이 익었다. 책장으로 걸어가 낮에 읽은 Future on Ice의 뒷표지를 훑어 보았다. 아까 그 작가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글을 둘이나 만난 그 날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로 내가 낸시 크레스의 이름만 실려 있으면 어떤 단편집이든 무작정 모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 때 내가 읽었던 글이 바로 낸시 크레스의 대표작, 휴고&네뷸러&스터전 수상작인 Beggars In Spain(1983)이다.

Beggars In Spain은 유전자 조작을 이용해 원하는 아이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처음 도입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날씬하고, 똑똑하고, 건강한 딸을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다. 지능이나 체력이야 새삼스럴 것이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아이, 레이샤(Leisha Camden)는 또한 다른 부분이 조작된 최초의 인간들 중 한 명이다. - 레이샤는 잠을 자지 않는다. Sleepless라고 이름붙여진 이 아이들은 곧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를 주도해간다. Sleepless들은 더 총명하고, 더 건강하고, 더 뛰어나다. 남들이 자는 사이에 공부하고 남들이 깨어 있을 때에도 일하며, 잘 지치지도 않는다. 도저히 보통 사람(Sleeper)들은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런 극소수의 사람들이 결국 다수에게서 비난과 악의와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욕심으로 자기 아이를 Sleepless로 만든 부모가 자지 않고 보채는 애를 버리거나 죽이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Sleepless들은 Sleeper들을 피해 자기들 끼리의 낙원이자 피난처를 만들어 보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를 내키지 않는 눈으로 보는 Sleeper들과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Sleepless들끼리도 마찰이 생긴다.

낸시 크레스는 이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듬어냈다. 어설픈 거대 담론을 끄집어내기보다는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나 버린 사람들이 겪는 삶, 사랑, 갈등을 세심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근본적인 면에서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레이샤는 총명한 젊은이이자,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Sleeper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인류이자, 사랑에 고민하는 아가씨이자, 레이샤 때문에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평범한 Sleeper 자매와의 관계를 난감해 하는 여동생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통해 '신인류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웃고 울며 공감할 현실이 된다.

낸시 크레스는 이후 Beggars In Spain을 장편으로 늘이고, 속편 Beggars and ChoosersBeggar's Ride를 발표하여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거지 삼부작(The Beggar Trilogy-혹은 Sleepless Trilogy)'을 완성했다. 속편은 솔직히 아쉬운 수준이다. 단편을 늘인 장편이 대개 그렇듯 이야기의 힘이 빠지고 거대 담론이 끼어들면서 3부작은 작가가 주체하지 못하는 제 8차원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중편 Beggars In Spain은 뒤에 군더더기를 붙여버린 낸스 크레스의 명백한 실수와 상관없는 걸작이다. 중편을 읽고 나면 틀림없이 속편이 읽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굳이 궁금하면 읽어도 별 상관은 없다. 비추천할 만큼 형편없는 글이 아니고, 낸시 크레스의 '사람이야기' 재주는 여전하니까. 하지만 너무나 훌륭한 중편에 비해 그 명성에 기댄 범작 티가 완연한 뒷 두 권을 굳이 찾지는 말기를 권한다.

Beggars In Spain의 중편 원작은 단편집 'Beaker's Dozon', 제임스 모로우(James Morrow)가 편집한 'Nebula Showcase' 27권, 내가 이 글을 접한 책인 가드너 도조와의 'The Year's Best Science Fiction: Ninth Annual Collection', 데이비드 하트웰(David G. Hartwell)의 'The Hard SF Renaissance'와 'The Science Fiction Century', 그레고리 벤포드(Gregory Benford)의 'The New Hugo Winners' 4권 등에 실려 있다. 이 외에도 아마 여러 단편집에서 찾을 수 있을 테고, 인터넷 이북 서점 fictionwise.com에서도 파일을 팔고 있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하기 쉽다지만, 감히 단언하건데, 이 글에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 2개:

  1. 고인께는 좀 미안한 얘기이겠지만, 제가 보기엔 낸시 크레스가 찰스 셰필드와 살면서 필력은 줄고 팔뚝힘은 강해진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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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솔직히 동감이라는...멀쩡히 있던 초훌륭 중편 Flowers of Adult Prizon의 설정을 가져다가 3부작 스페이스 오페라로 만들어 버린 'Probability Trilogy'를 보고 있자니 이건 셰필드의 탓(!)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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