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1일 일요일

James Morrow, Towing Jehovah

ISBN: 0156002108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시스틴 성당 천정화에는 구름 위에 둥둥 떠서 흰 수염을 휘날리는 분이 등장하시니, 그분이 바로 여호와니라. 하지만 실제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 중 절대자가 인간, 그것도 앞머리가 살짝 벗겨진 백발의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제임스 모로우(James Morrow)의 유쾌발칙한 소설 '하나님 끌기'는 딱 그 그림같이 생긴, 키가 '2마일(3200m)'에 달하는 신이 정말 '하늘 위'에 살고 '있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왜 과거형인가, 그야 물론 이 신이 원인불명의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길이가 2마일, 무게는 당연히 몇십 톤에 달하는 시체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태평양에 둥둥 떠다니게 되었고, 천사들은 이 창조자의 시체를 썩기 전에 북극으로 보내 얼려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고 싶어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공명하는 - 그러니 함께 죽게 되는 - 천사에게는 장례를 치를 시간이나 힘이 없다. 그래서 천사들은 곳곳에 흩어져 장례를 치를 사람들을 모은다.

Anthony Van Horne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 유조선을 운항하는 유명한 선장이었으나, 잠깐 선교를 비운 사이에 유조선 침몰이라는 큰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환경운동가들의 적이고, 바다의 불운이고, 위대한 선장이자 천상 바닷사람인 아버지로부터까지 비웃음을 당하는 불쌍한 아들이 된 비참한 전직 선장(현직 백수)이다. 그는 사고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밤이면 비누로 몸을 씻고 또 씻고, 꿈 속에서는 기름 범벅이 되며 살고 있다. 그런데 평소처럼 몰래 예배당 연못에서 몸을 씻고 나오던 밤에, 난데없이 하나님의 시체를 끌 배의 선장을 맡으라는 천사 라파엘을 만난다.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이상하다. 게다가 등 뒤로 보이는 저것은 틀림없는 후광! 얼떨떨한 전직 선장 앞에서 라파엘은 아버지에게 다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Thomas Ockham 신부는 과학적인 사고를 자랑으로 삼는 성실한 성직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바티칸의 부름을 받은 그는, 바티칸 지하 비밀 방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다. 가브리엘에게서 하나님이 죽었고 북극에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들은 교황은 바티칸의 돈으로 배를 마련하고, 천사들이 시킨 대로 Van Horne을 선장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카톨릭의 책임자로 Ockham신부와 Maria 수녀를 보낸다. 또한 현대는 과학의 시대, 바티칸에게는 또다른 잠정적인 목표가 있으니, 바로 바티칸의 수퍼컴퓨터 OMNIVAC 이 계산한 시일 안에 하나님의 시체를 북극에서 얼려 그 뇌세포를 보존하여 장래에 하나님의 부활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체가 썩기 전에 북극까지 가야 한다.

선원을 모집하고 바삐 출발한 Carpo Valparaiso호. 물론 선원들은 유조 업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바티칸과 배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때가 되어 실제 배의 임무를 알게 된 선원들은 혼란에 빠지며, 항해 중에 우연히 구출한 여자 Cassie Fowler도 말썽이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다 말하면 독서의 재미를 빼앗는 꼴이 될 터이니 이쯤에서 그만둔다. 이 책은 (실제 종교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특정 종교를 비웃거나 비난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이 책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이 있든 없든 결국은 이어지는 인간의 삶이다. 그 속에 담긴 괴로움과 기쁨, 갈등과 사랑, 무엇보다도 충만하지 않을지언정 사라지지도 않는 희망을 모로우는 놀랄 만큼 재치있고 솔직하게, 단단한 심지가 살아 있으면서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풍자에 담아낸다. 굉장히 심각하고 위험할 수 있는 소재를 "야아, 이 발칙한 사람 좀 보게나." 하고 낄낄 웃게 다듬어 내놓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제임스 모로우는 성경을 비튼 판타지를 여러 권 썼다. Blameless in AbaddonThe Eternal Footman로 이어지는 삼부작의 첫번째 편으로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 외에도, 시험용 인공자궁에서 태어나 등대지기의 딸로 자라는 하나님의 딸(즉 예수의 여동생)이 주인공인 Only Begotten Daughter(세계환상문학상 수상작), 제목만으로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는 단편집 Bible Stories for Adults등이 나와 있다. 멋진 풍자 판타지를 읽고 싶다면 (그리고 성스러운 옛날 이야기의 비틀림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느 책이든 좋으니 한 번 읽어 보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국내에 소개되기를, 이왕이면 직접 소개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댓글 5개:

  1. 푸하하 OMNIVAC이라니... 작명 센스가 압권! 그리고 Jay 님, 2마일이라면 3200m겠죠(지구의 반지름이 6000km인데) :)



    그리고 혹시 Storm Constantine이라는 작가 소설 읽어보신 적 있나요? 이 사람도 기독교 신화와 관련된 소설을 몇 권 쓴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읽어볼 만한지 궁금해서 그래요(듣자하니 dark fantasy라는데~~ Jay님 취향하곤 다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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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개해주세요! 설정이 너무너무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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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펠님/예입.

    covenant님/ 앗차, 고쳤사와요. Storm Constantine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다크판타지가 아니라 에로틱 판타지 계열의 작가로 보이는 것은 어째서인지.;

    sabbath님/ '귀엽다'는 최강 형용사를 쓰시다니! >_</

    ......하지만 저는 힘이 없답니다.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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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torm Constantine.



    Wraeththu를 읽다가 포기했고 (어느새 Wraeththu Mythos가 되어 다른 작가들이 곁가지 이야기도 쓰는 지경에 이르렀더군요), The Chronicles of Magravandias, Book 1인 Sea Dragon Heir도 3분의 2쯤 읽다가 때려치우고...



    입맛에 맞는 판타지 팬이라면 도전해볼만 할 겁니다. 취향이 빗나가는 사람에게는 '기이한 듯 보이지만 결국 짜증나게 뻔한 판타지'가 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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