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4일 금요일

Gary Turner, Marty Halpern ed., The Silver Gryphon


Jim Turner가 1997년에 설립한 소형 출판사 골든그리폰은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한 하드커버를 내놓는다. 짐 터너가 1999년 사망한 후 가족들이 이어온 이 출판사는 제본, 표지, 작품, 작가 모두를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보통 소형출판사의 쇠박이로 찍은 소형책자나 몇몇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 장정본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는데 성공했다.

The Silver Gryphon은 골든그리폰에서 스물 다섯번째를 기념하여 만든 책으로, 첫 번째 책부터 스물네 번째 책까지의 작가 스무 명이 각각 한 편씩 참여한 오리지널 앤솔로지이다. 스물 네 권중 한 권은 앤솔로지이고 작가 중 두 명은 두 권을 냈기 때문에 토니 다니엘을 제외하면 모두 참여한 셈이다. 제목도 스물 다섯 번째라 이리 지었단다. 더스트재킷 아래 양장도 반짝이는 은색으로 공을 들였다. (오십 번째에는 골든그리폰, 백 번째에는 플레티늄 그리폰이 되지 않을까나.) 저자와 편집자가 서명한 사인본도 백 권 만들어 한정 판매했다.

그러면 이렇게 공을 들인 단편집의 속은 어떨까? 일단 골든그리폰에서 책을 낸 작가들의 수준 자체가 높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어도 기본적으로 좋은 책이 나올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글 잘 쓰는 작가들이 내 놓은 한 편이 과연 어떤 글일지 평소보다 더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 유별난 기대를 안고 읽은 'The Silver Gryphon'은 예상보다 훨씬 무난했다. 못 썼다거나 부족했다는 말이 아니다. 모두 '가장 훌륭한' 글은 아니더라도 꽤 좋은 작품들로 작가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을 찾아나서는 작품은 없다. 작가들은 장편이나 시리즈물에서 사용했던 배경으로 돌아가거나 ㅡ Kage Baker는 불멸자들의 역사탐방(?)을 다룬 자신의 Company시리즈에 바탕한 단편 A Night on the Barbary Coast를, Robert Reed는 소설 Marrow와 배경이 같은 Night of Time을 썼다 ㅡ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익숙한 주제를 그 작가만의 익숙한 방식으로 다룬다. Lucius SheperdAfter Ildiko는 남미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Geoffrey A. LandisThe Time-Travel Heart는 조금 구식이긴 하지만 재치있는 시간여행 단편이다. 그러고 보니 George Zebrowski도 시간여행, Kevin J. Anderson은 대체역사네.

내게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George Zebrowski의 단편 Take You Back이다. 잠깐 나간다며 집을 나선 순간 삼 년 전으로 뒤돌아가 버린 남자는 현재가 돌아오기를 숨죽여 기다린다. 자취방을 얻어 잡일을 하며 자기(과거의? 현재의?)와 아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다. 특별한 반전이 있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고조되는 긴장감을 과장하지 않고 솜씨좋게 그려냈다.

특별히 처지는 작품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까지 책을 낸 작가들을 모아 만든 이 책은 기존의 골든그리폰 단편집을 읽은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더 인상적이겠다는 느낌을 준다. 모든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분명히 드러내며 딱 '나다운' 글을 내 놓았기 때문에 골든그리폰의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는 사람에게 적합하겠다. 기존 독자들은 기대를 너무 높이지 말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괜찮은 작품을 모아 정리한 예쁜 책을 한 권 가진다는 생각으로 사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전체목차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