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5일 토요일

권교정, 어색해도 괜찮아 1-5


준성인 대상 순정만화잡지 '윙크'에 대해 우선 말해보자. 5월 15일자 윙크에는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못 받아 성격이 비뚤어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화가 다섯 편, 그냥 성격이 비뚤어진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가 두 편, 인기 아이돌이 등장하는 만화가 한 편 실려 있다.

순정만화의 전형성은 때로 지나치게 비틀어진, 그래서 불편한 비현실성을 동반한다. 너무 자주,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고, 학교는 지긋지긋하기 그지없는 곳이며 틀림없이 같은 열 몇 살 아이에 불과한 조연 여학생은 삼각관계의 한 틀을 맡은 악의 대변자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여1:남2 삼각관계의 남자 조연보다 여2:남1 삼각관계의 여자 조연 쪽이 훨씬 비열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만화 주인공들이 모두 하하호호 웃으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역할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만화를 보는 사람이나 그리는 사람이나 자기가 담을 넘는 모습을 본 [이왕이면 잘생기고 약간 반항기가 있고 어머니가 안 계신] 나무 위 남학생과 첫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 극단적인 전형성의 비틀어짐이 피곤하고, 그 안에 스며 있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서두가 길었으니 간단히 줄이면, 나는 이런 삐딱한 비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권교정의 만화를 좋아한다. 교실에 남아 피아노를 연주하던 학생을 우연히 보았는데 알고보니 잘생겨서 전교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애더라는 설정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권교정은 순정만화의 안전한 설정을 전복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비범한 일상성을 드러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개 학창 시절은 평범했고, 그래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생각한다. 시험 결과에 동요하고, 처음 마음에 든 남학생을 보며 가슴 설레고, 친구들과 함께 군것질을 하고, 가끔은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도 해 보고. 그러면서 어른이 되고.

그렇다고 권교정의 만화가 지극히 섬세하고 예민하거나 심각한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낄낄 웃어버리고 말 만큼 재치있는 장면도 여럿 있다. 어떤 감정이든 도들 넘지 않는 소소함을 지킨다. 어서 어른이 되려 발버둥치기보다는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과 설레임을 그 나이에 딱 맞게 감싸안고 성장의 길목에 선 주인공들은 따뜻한 공감을 불러온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따뜻한 시선에는 '어색해도 괜찮은 나이'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아니라 언젠가 어른이 될 자신에 대한 기대, 혹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어 있는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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