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4일 월요일

[소개] Analog Science Fiction and Fact

잡지는 영어권 국가, 특히 미국에서 과학소설과 판타지 단편이 독자와 만나는 중요한 통로이다. 각 잡지는 편집자의 취향과 잡지 자체의 역사에 따라 싣는 작품의 종류와 분위기가 제법 다르기 때문에, 어느 잡지에 실렸는지만으로도 그 소설이 어떤 글일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리뷰를 올릴 각 잡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본다.

Analog Science Fiction and Fact(이하 '아날로그')는 과학소설을 지금과 같은 하나의 장르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던 유명한 편집자 캠벨(John W. Campbell)이 만든 잡지로 전신은 Astounding이다. 캠벨은 '과학'과 '소설'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작가들을 몰아붙여 과학소설을 괴물이 난무하는 황당한 싸구려에서 '말이 되는 이야기'로 바꾸며 과학소설의 황금시대(The Golden Age)를 열었다. 캠벨은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글을 써내지 않는 작가는 가차없이 외면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과정에서 발굴되어 지금껏 이름을 남긴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아시모프(Issac Asimov),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 앤더슨(Poul Anderson), 스터전(Theodore Sturgeon)등이다. 참고로 소위 캠벨리언 SF(Campbellian SF)라고까지 불린 이 스파르타식 과학소설 쓰기에 대한 반발은 사이버펑크나 뉴웨이브 같은 60년대 이후의 변화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캠벨이 펄프잡지 어스타운딩을 맡은 것이 37년. 그 사이 과학소설은 캠벨리안 SF를 넘어 뉴웨이브, 사이버펑크, 페미니즘 SF 등으로 그 경계를 확장하며 '말이 되는 이야기'를 넘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독립된 문학적 시선'으로 자신을 재정립하려 분투해 왔다. 캠벨의 방식은 이제 과학소설을 틀 안에 가두어 문학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한 원인으로 비판받는다.

하지만 최종 공과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캠벨이 과학소설사에 미친 영향은 지울 수 없고, 그 영향력은 '존 캠벨 기념상'이라는 문학상과 아직도 '과학소설'이라는 길을 분명히 가고 있는 잡지 아날로그에 선명히 살아 숨쉰다. 네뷸러를 수상한 작가 출신인 가드너 도조와(Garnder Dozois)가 이십 년 가까이 맡은 아시모프지(Asimov's Science Fiction)나 직업적 출판인인 고든 반 겔더(Gorden Van Gelder)가 꾸리는 FSF(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와 달리 물리학 박사인 스탠리 슈미트(Stanley Schmidt)가 편집을 맡고 있다는 것 부터가 ㅡ 그 전에는 NASA가 생기기도 전부터 미국의 우주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과학자 벤 보바(Ben Bova)였다 ㅡ 아날로그의 지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아날로그에 주로 실리는 작품의 성격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과학적 아이디어'이다. 인물? 성격? 전혀 없다면 지나친 혹평이겠지만 아날로그의 데스크는 그 쪽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덜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내 주관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아날로그는 정치적으로도 조금 수상하다.(하인라인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대신 아날로그에서는 기발한 과학적 아이디어, 혹은 진짜 하드한 하드 SF를 만날 수 있다. 아날로그에 주로 작품을 싣는 작가 중에는 물리학자, 천문학자 등 과학계 종사자가 유달리 많다. 표제의 Fact가 무색하지 않게 교양과학 칼럼도 꾸준히 실린다. 엔지니어가 아니면 전혀 웃기지 않을 꽁트도 잊을만 하면 하나씩 나온다.

과학소설과 일반문학과 환상소설이 하나가 되는 요즈음 아날로그는 구식 SF나 실으며 지나간 영광에 집착하는 잡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날로그에나 실릴 법한 글'이라는 빈정거림 뒤에는, 칠십 년 동안 굳혀온 나름의 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독자를 놀라게 하지 않는' 단단함은 개인의 취향이 어떻든 과학소설 독자라면 인정해야 할 가치이다.


아날로그에 대한 개인적인 주절

댓글 1개:

  1. 책 정리 하다가 아날로그 스무 권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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