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1일 금요일

Jeffrey Ford, The Portrait of Mrs.Charbuque

ISBN: 0060936177


이탈리아 이민자인 할아버지와 무기 제조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화가 피암보(Piambo)는 부자들의 마음에 쏙 드는 초상화를 그리는 일로 재능을 낭비하[고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 시달리는 부인을 부유한 의뢰인 남편이 바라는 이상형에 가깝게 그려준 날, 축하 파티에서 그는 평생 남편이 바라던 모습인 초상화와 실제의 사랑 없는 결혼 사이에서 시달려야 할 부인으로부터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술에 절어 파티장을 뛰어나오고 만다.

그 때, 피암보에게 앞 못 보는 노인이 시허연 눈을 희번득거리며 다가와 성공하기만 하면 엄청난 대가를 얻을 일이 있다고 제안한다. 자기가 모시는 셰르부끄 부인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이상하기 그지없다. 부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만 나누어 실물과 꼭 같이 그려내야 한단다. 피암보는 이번 일만 성공하면 부유층 언저리에서 쓸모없는 초상화나 그리는 생활을 접고 원하는 그림을 그릴 경제적 여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제안에 응한다.

처음에는 부자의 변덕 정도로 생각했던 일은 점점 깊고 복잡해지고 어린 시절의 기억, 화가 친구들 사이의 비밀, 살인 사건 등이 얽히며 피암보는 더 이상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상황에 붙잡혀 버리고 만다.그리고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서 일상처럼 펼쳐지는 환상은 피암보 뿐 아니라 독자도 붙잡아 끌어들인다. 과연 피암보는 초상화를 그릴 수 있을까? 셰르부끄 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살인자는 누구이며 그 뒤에는 누가 있을까?

포드는 자연스럽게 끄집어낸 이야기를 그만큼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마무리한다. 깔끔하고 영리하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과 책을 덮은 순간 밀려드는 충족감은, 독자에게 그가 그저 '읽히는 글쟁이'에 그치지 않고 '기억되는 예술가'로 올라서리라는 믿음을 남긴다.

댓글 1개:

  1. 제프리 포드의 작품을 드디어 소개해주시는군요. 최근작이라 amazon에서 검색하면 바로 뜨던데. 관상학(골상학, Physiognomy)보다 더 잘 썼다니 보던 책 다 읽으면 구해봐야겠군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