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BN: 0060936177
이탈리아 이민자인 할아버지와 무기 제조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화가 피암보(Piambo)는 부자들의 마음에 쏙 드는 초상화를 그리는 일로 재능을 낭비하[고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 시달리는 부인을 부유한 의뢰인 남편이 바라는 이상형에 가깝게 그려준 날, 축하 파티에서 그는 평생 남편이 바라던 모습인 초상화와 실제의 사랑 없는 결혼 사이에서 시달려야 할 부인으로부터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술에 절어 파티장을 뛰어나오고 만다.
그 때, 피암보에게 앞 못 보는 노인이 시허연 눈을 희번득거리며 다가와 성공하기만 하면 엄청난 대가를 얻을 일이 있다고 제안한다. 자기가 모시는 셰르부끄 부인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이상하기 그지없다. 부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만 나누어 실물과 꼭 같이 그려내야 한단다. 피암보는 이번 일만 성공하면 부유층 언저리에서 쓸모없는 초상화나 그리는 생활을 접고 원하는 그림을 그릴 경제적 여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제안에 응한다.
처음에는 부자의 변덕 정도로 생각했던 일은 점점 깊고 복잡해지고 어린 시절의 기억, 화가 친구들 사이의 비밀, 살인 사건 등이 얽히며 피암보는 더 이상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상황에 붙잡혀 버리고 만다.그리고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서 일상처럼 펼쳐지는 환상은 피암보 뿐 아니라 독자도 붙잡아 끌어들인다. 과연 피암보는 초상화를 그릴 수 있을까? 셰르부끄 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살인자는 누구이며 그 뒤에는 누가 있을까?
포드는 자연스럽게 끄집어낸 이야기를 그만큼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마무리한다. 깔끔하고 영리하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과 책을 덮은 순간 밀려드는 충족감은, 독자에게 그가 그저 '읽히는 글쟁이'에 그치지 않고 '기억되는 예술가'로 올라서리라는 믿음을 남긴다.
제프리 포드의 작품을 드디어 소개해주시는군요. 최근작이라 amazon에서 검색하면 바로 뜨던데. 관상학(골상학, Physiognomy)보다 더 잘 썼다니 보던 책 다 읽으면 구해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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