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9일 일요일

Nancy Kress, Out of All Them Bright Stars



지금까지 읽은 과학소설이래야 한 줌 남짓하지만,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한참이나 망설이게 된다. 마이클 스완윅, 루시우스 셰퍼드, 로버트 찰스 윌슨처럼 한참 활동중인 중진, 토니 다니엘 같은 가능성 있는 신인, 절정기의 토머스 디쉬나 시어도어 스터전, 아서 클라크. 고만고만하게 기억에 남는 '좋은' 작가들 중에 딱히 한 사람만 짚어내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분명히 말할 수 있으니, 낸시 크레스(Nancy Kress)의 단편 'Out of All Them Bright Stars'(1985 네뷸러 단편부문 수상작)가 바로 그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고속도로변에 있는 작은 음식점에 외계인이 잠시 들러 가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로, 길이도 겨우 대엇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짧은 글에서 낸시 크레스는 '최초의 접촉(First contact)'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 앞에서 평범한 사람이 경험하는 희미하고 작은,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깨달음을 놀랍도록 깊이있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런 세심한 감수성은 낸시 크레스표 중단편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이다. 어떤 상황, 어떤 시대, 어떤 공간에서나 그의 등장 인물은 살아 움직인다. 장르의 틀을 넘어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고 서서 독자와 함께 숨쉰다.

최근 황금가지와 시공사의 SF걸작선을 통해 두 편이 번역 출간되었지만(특허권의 침해, 구세주) 낸시 크레스의 진수를 맛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Out of All Them Bright Stars가 실린 단편집 'Trinity and Other Stories'은 이제 구할 수 없지만, 그만큼이나 훌륭한 작품이 다수 실린 'Beaker's Dozen'은 아직 온라인으로 쉽게 살 수 있다.

'이런 글을 읽을 기회를 얻어 정말 다행이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라 새 게시판 첫글로 소개해 본다.

댓글 12개:

  1. "지금까지 읽은 과학소설이래야 한 줌 남짓하지만"…



    사실이라곤 해도 귀여운 후배에게 좀 희망차게 와닿을 수 있는 표현을 써 주세요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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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ancy 아줌마의 다른작품이 있었는데 어느새 이게 첫글이. Jay님은 손이 얼마나 크길래, 한줌이 ..., 'Beaker's Dozen'은 1999년에 paperback이 나왔는데 아직 팔고 있군요. 2000년 이후에 나온책들도 절판된게 많은데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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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abbath/ 잇힝~ ^^a

    scifi/ 하하. 낸시 크레스, 차근차근 다 올리려고요. 말씀하신 걸 보니 생각나서 다음 엔트리는 Beaker's Dozen에 대해 써 봤습니다. 댓글이 바로바로 보이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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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금껏 읽은 SFF 단편들 중에서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걸작이죠. 저도 이 단편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저릿저릿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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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Dale Bailey의 단편집 The Resurrection Man's Legacy and Other Stories에 실린 단편 "Death and Suffrage"을 추천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무덤 속의 시체들이 걸어나와 투표를 하려한다는 얘기인데 최근 정치상황과 맞물려 매우 의미심장하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판타지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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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ihong/ Bailey 단편집은 공포 쪽이라 무서울 것 같아 안 샀는데......얼마나 무서운가요? 참고 읽을 만(?)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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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재미있게 읽었다고 소개해주면서 "이제 구할 수 없지만" 이라고 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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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scifi/ Out of all them bright stars만이라면 위에 표지를 올린 Future on Ice (Orson Scott Card ed.), New Skies(PNH ed.)에 실려 있고, 찾아보진 않았지만 Year's Best에도 틀림없이 있을 거에요.

    YA대상 과학소설 앤솔로지인 New Skies 대략 괜찮습니다. 80년대 이후의 작품 중 소재나 느낌이 각각 다른 단편들을 모아 꽤 읽을만하게 만들었어요. 음......이미 가지고 계신 Year's best등 앤솔로지와 수록작이 겹칠 가능성이 많다는 게 좀 그렇긴 하네요.



    헉, 잠시 찾던 중에 발견! 온라인에 누가 통채로 올려놨습니다.;;

    http://members.fortunecity.com/tirpetz/FavShorts/brightstar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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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어허 이런일이, 보고싶은건 많은데 시간이 문제로다. 감사합니다. Year's Best 시리즈도 이것저것 읽다보니 어디까지 읽었는지 뭘 읽었는지도 헷갈리는군요. 작년까지 11권(Fantasy도 삽니다), 올해 또 사면 13권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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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Dale Bailey가 공포소설 전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뭐 오금저리게 무서워서 못읽겠다는 정도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공포쪽에 접근하는 기가 막힌 판타지라고 봐야겠죠. "Death and Suffrage"는 정말 강력하게 추천. (이 단편집은 제가 보기에 2003년에 나온 가장 훌륭한 개인단편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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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Year's Best SF에 실린 Nancy Kress 작품 목록

    1권 Evolution, 3권 Always True to Thee in My Fashion,

    4권 State of Nature, 6권 To Cuddle Amy, 7권 Computer Virus, 8권 Patent infrin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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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scifi/아아, 제가 위에서 말한 Year's best는 하트웰이 아니라 도조와 편입니다. 하트웰은 90년대부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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