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5일 화요일

Orson Scott Card ed., Future On Ice


단편선(anthology)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한 해의 수작을 모은 책도 있고, 시대별로 구분한 책도 있으며, 특정한 소재나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관련 작품을 모은 책도 더러 나온다. 이런 단편선은 여러 작가의 글을 한 책에서 볼 수 있다는 점 뿐 아니라, 편집자가 어떤 기준하에 작품을 추려 해석했는지를 통해 같은 글을 다른 시각에서 재발견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따라서 단편선은 편집자의 작품을 고르는 눈과 골라낸 글을 엮어 독자에게 일관성 있게 드러내는 솜씨에 따라 수준이 갈린다. 좋은 작품이 많이 실린 걸작선이라도 제대로 갈무려지지 않았다면 그저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이름난 단편을 거듭 찍어낸 종이더미에 불과하다.

Future On Ice는 바로 이 '갈무림'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안타까운 단편선이다. 재미는 있다. 올슨 스콧 카드의 소개글도 읽을 만 하고, 수록작도 그럭저럭 수긍이 가는 작품들이다. 문제는 올슨 스콧 카드가 이 단편뭉치로 대체 뭘 하고 싶었는지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제목이 Future On Ice인데 다루고 싶었던 것이 얼음처럼 차가운 인간사인지, 빙하기의 인류인지, 지구멸망인지, 그냥 눈 오는 날인지 이렇게 감이 안 잡혀서야. 누구나 '좋은 책 읽었다'고 말하며 책을 덮을법한 지극히 '안전한' 글을 모았기 때문에 혹평하기도 어렵다. 읽은 후 한참이 지나 되짚어 보면 '그런데 OSC는 한 게 뭐냐'싶어진다. 소개글 몇 장으로 제목만큼 커다랗게 찍힌 이름값을 했다고 보기는 무리다. 좋은 단편이야 개별 작가들이 쓴 것이고, 숨겨진 보석을 발굴했다고 칭송할만큼 도드라지는 선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있으면 읽어도 후회없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그만인 책이다.

본래 이 단편선은 Future On Fire(1991)라는 단편선의 후속작이다. Future On Fire는 내가 Future On Ice를 샀을 때 이미 절판이었기 때문에 아직껏 읽어보지 못했다. (솔직히 별로 구해보려 애쓰지도 않았다.)

전체목차

댓글 2개:

  1. FoF는 FoI보다 훨씬 낫죠. 아직 초보독자에 불과하던 시절 OSC의 서문을 읽고 느낀 바가 많아서 번역까지 했던 기억이. 그 번역문은 현재 찾을 길이 없지만... 그래서 FoI 나온 다음에 얼마나 열받았었는데요. FoF의 반절도 못 따라가기에... (기대가 컸던 탓도 있지만.)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