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1일 금요일

Thomas M. Disch, The Genocides

ISBN: 0375705465


내가 처음 읽은 디쉬의 장편은 Camp Concentration이었다. 이 소설은 지적 능력을 몇 배로 증가시키는 대신 수명을 10개월 정도로 단축케 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연구(과연?)를 하는 '캠프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 지적인 현란함과 긴장감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결말이라니!

디쉬의 글은 읽기에 쉽지 않다. 독자의 정신을 쏙 빼놓는달까. 친절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아름다움. '이봐, 넌 아무것도 아냐.', '못 알아듣겠으면 네가 그만둬. 난 설명할 생각 없으니까.'라고 내뱉는 듯한 문장과 줄거리는, 그러나 동시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단편 몇 작품을 거치고 집어든 The Genocide는 역시 대단했다. 처음 두어 페이지만에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숲. 어느날 갑자기 자라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식물(plant)들은 엄청난 속도로 인간의 세계를 잠식해 들어간다. 몇십미터의 길이에 꽃대처럼 부드러운 둥치를 가진 이 나무는 처음 발견된 지 7년여 만에 지구를 거의 뒤덮는다. 제일 먼저 자급자족이 힘든 도시들이 무너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며 국가도 사라졌다. 대부분의 동식물은 멸종하고 강은 말라붙었다. 몇몇 농민들만이 끊임없이 식물을 제거하고 농토를 조금이라도 확보하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 사람들 중 하나가 타셀에 사는 앤더슨이다. 그는 자기 마을의 지도자로 식물에 맞서서 농토를 지키고, 늑대 ㅡ 진짜 늑대가 아니라, 농민과 달리 자급기반이 없어 떠돌아다니는 도시출신민 ㅡ 들로부터 자기들의 자원과 사람을 보호한다. 독실한 신자인 앤더슨은 자신에게 노아(노아의 방주)의 사명이 주어졌다는 쪽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권력은 사실 그가 가진 총에서 나온다. 그는 그들 중 무기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다.)

스포일러 있음(계속읽기)


디쉬는 번역이 너무 어렵고 소위 '눈물과 감동이 있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팔릴지도 짐작할 수 없어 국내에 소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과학소설 독자라면 디쉬를 적어도 한 권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부터도 번역하라면 절대 사양이니 말이다 (누구 다른 사람이 해 준다면 좋지). 빈티지(Vintage)에서 Camp Concentration, The Genocide, 334를 재간하여 구입이 가능하다. 너무 감동해서 감상을 쓸 수조차 없었던 성장소설 On Wings of Song은 아쉽게도 이미 절판이지만 ㅡ 어째서 이런 책이 절판일까! ㅡ, 온라인 헌책방 사이트에서 Bantam의 MMPB판이나 Carrol&Graf의 TPB판을 3달러(+우송료 7달러) 정도에 쉬이 구할 수 있다.

댓글 2개:

  1. TV에서 오래간만에 웨일즈의 포트멜리온 마을이 나오는 걸 보고 문득 노벨라이제이션인 The Prisoner부터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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